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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의 첫 걸음, 왜 허세부터 시작할까?

by 정명훈

창업하고 처음 'CEO'라는 타이틀을 달았을 때, 묘한 기분이 든다. 명함에 찍힌 그 세 글자가 마치 내가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많은 CEO들이 똑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바로 '허세'라는 함정에 빠지는 것이다.



지원금 받고 어깨 올라가는 CEO

정부 지원금 5천만원을 받은 스타트업 A사의 김 대표. SNS에 "○○부처 혁신 프로젝트 선정"이라는 글과 함께 현판식 사진을 올렸다. 그날부터 후배들과의 술자리에서 "요즘 정부에서 우리 회사 주목하고 있어", "지원금 받기가 쉬운 게 아닌데"라는 말이 입에 붙었다.


3개월 후, 정작 제품 개발은 지지부진한데 지원금 정산 서류에 매달리며 스트레스 받고 있다. 투자자 미팅에서도 "저희는 정부 선정 기업입니다"를 먼저 강조하다가 "그래서 제품 경쟁력은?"이라는 질문에 말문이 막혔다.


지원금은 사업의 '시작 도움'일 뿐, 사업의 성공을 보증하는 것이 아니다. 지원금을 받았다는 것은 아이디어의 가능성을 인정받았다는 의미지, 회사가 이미 성공했다는 뜻이 아니다. 더 중요한 건 그 돈으로 무엇을 만들어내느냐다.


지원금 받은 날은 자축해도 좋다. 하지만 다음 날부터는 더 겸손해져야 한다. 그 돈은 국민 세금이고, 당신은 이제 그 돈으로 결과를 만들어내야 할 책임을 진 사람이다. SNS에 현판식 사진 올리는 것보다 매주 개발 진척도를 팀원들과 공유하는 게 백배 중요하다.




매출 좀 오르면 거들먹거리는 CEO

첫 해 매출 2억을 달성한 B사의 이 대표. 예전에 자신을 무시하던 지인들에게 연락해 "요즘 사업이 좀 되네"라며 은근슬쩍 자랑했다. 직원들과의 회의에서도 "내가 보기엔 이건 아닌 것 같은데?"로 시작하는 말이 잦아졌다.


파트너사 미팅에서 "저희는 성장세가 가파라서 조건이 맞아야 협업하겠습니다"라며 강하게 나갔다. 결과는? 좋은 파트너십 기회 3건을 날렸고, 핵심 직원 한 명이 "대표님 변하셨어요"라는 말을 남기고 퇴사했다.


매출 2억은 시작일 뿐이다. 운영비, 인건비 빼면 남는 게 얼마나 되는가? 더 중요한 건 이 매출이 지속 가능한가, 확장 가능한가이다. 초기 성공에 도취되면 시장의 냉정한 피드백을 놓치게 된다.


매출이 오르는 건 축하할 일이다. 하지만 그건 당신 혼자 만든 게 아니다. 밤샘 작업한 직원들, 초기부터 믿어준 고객들, 좋은 조언 해준 멘토들의 합작품이다. 거들먹거릴 시간에 감사 메시지를 보내라. 그리고 다음 목표인 10억을 어떻게 만들지 고민하라. 진짜 성공한 CEO들은 100억 매출에도 "아직 멀었습니다"라고 말한다.




사무실에 잠깐만 출근하는 CEO

회사가 어느 정도 자리 잡자 C사의 박 대표는 "전략적 사고는 사무실에서 나오는 게 아니야"라며 주 3일만 출근하기 시작했다. 외부 미팅이 많다는 핑계로 오후 3시에 나타나 6시에 퇴근하는 날도 잦아졌다.

직원들은 아침부터 밤까지 사무실을 지키는데, CEO는 골프 치고 카페에서 노트북 켜놓고 '전략 회의'한다며 사진 올린다. 6개월 후 팀장들이 단체로 면담을 요청했다. "대표님, 우리 뭐 하는 건가요? 비전이 뭔가요?" 그제야 위기를 느꼈다.


CEO가 없으면 회사의 방향이 흔들린다. 특히 초기 단계에서 CEO의 부재는 직원들에게 "대표가 우리를 신경 안 쓴다" 또는 "회사가 위험한 건 아닐까"라는 불안감을 준다. 전략은 현장에서 나온다.


외부 미팅이 많은 건 이해한다. 하지만 직원들이 당신을 볼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라. 주 3일 출근한다면, 그 3일은 아침 9시부터 저녁 7시까지 사무실에 있어라. 나머지 시간에 외부 미팅을 잡아라. CEO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팀의 방향을 제시하고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다. 물리적 부재는 정신적 공백을 만든다. 정말 큰 회사의 CEO가 되고 싶다면, 지금은 가장 열심히 출근해야 할 때다.




미팅 때 앉자마자 다리 꼬고 듣는 CEO

투자자와의 미팅에 들어간 D사의 최 대표. 의자에 앉자마자 다리를 꼬고 팔짱을 낀 채 고개를 약간 뒤로 젖혔다. "네, 말씀하세요"라는 톤도 약간 건방졌다. 투자자가 질문할 때마다 "그건 이미 생각해봤고요", "그 정도는 저희도 압니다"라며 받아쳤다.


미팅은 예정보다 20분 일찍 끝났다. 투자는 물론 무산됐다. 나중에 중개인을 통해 들은 피드백은 "실력은 있어 보이는데 함께 일하고 싶지 않더라"였다.


바디랭귀지는 당신의 태도를 그대로 드러낸다. 다리를 꼬고 앉는 것, 팔짱 끼고 듣는 것은 무의식적으로 "나는 여유롭고 우위에 있다"는 신호를 보낸다. 하지만 투자 받으러 온 사람이 왜 우위에 있는가? 이건 자신감이 아니라 오만이다.


미팅은 전쟁터가 아니다. 협력의 장이다. 투자자든, 파트너든, 고객이든 상대방을 존중하는 자세를 보여라. 다리는 바닥에 딱 붙이고, 상체는 약간 앞으로 기울여 경청하는 자세를 취하라. 메모하라. 질문하라. "좋은 지적입니다. 그 부분을 어떻게 보완하면 좋을까요?"라고 물어라. 진짜 CEO는 자존심이 아니라 결과를 챙긴다.




SNS에서 '성공한 CEO' 코스프레

E사의 정 대표는 회사가 힘들 때도 SNS에는 "#성공 #CEO #리더십 #아침루틴"을 달며 호텔 조식 사진과 비즈니스북 인증샷을 올린다. 실제로는 투자 유치 실패로 월급 밀리고 있는데 말이다. 직원들이 그의 SNS를 보며 "저 사람 진짜 현실 모르나"라고 수근거린다. 몇 달 후 회사는 문을 닫았고, 그는 "환경이 안 좋았다"며 책임을 외부로 돌렸다.


가짜 성공은 실제 실패를 가속화시킨다. 허상을 유지하는 데 에너지를 쓰는 순간, 진짜 문제 해결에서 멀어진다. 더 나쁜 건 직원들의 신뢰를 잃는다는 것이다.


SNS는 당신의 일기장이 아니다. 올리려면 진짜 성과를 올려라. "오늘 첫 고객 계약 성사!", "팀원들과 밤샘 개발 끝내고 치킨 파티"처럼 진짜 순간들을 공유하라. 아니면 아예 조용히 있어라. 최고의 SNS는 실제 성공이다. 입소문은 당신이 만드는 게 아니라 고객이 만들어준다.




허세를 버리고 진짜 CEO가 되는 법

첫째, 겸손은 약점이 아니라 강점이다. "잘 모르겠습니다. 도와주시겠습니까?"라고 말할 수 있는 CEO가 더 빨리 배운다.


둘째, 타이틀이 아니라 행동이 당신을 정의한다. 명함에 CEO라고 써있어도 아무 의미 없다. 새벽에 고객 응대하고, 직원들과 함께 야근하고, 위기 때 앞장서는 행동이 진짜 CEO를 만든다.


셋째, 성공의 기준을 바꿔라. "나 좀 하는데?"가 아니라 "우리 고객이 만족하는가?", "우리 팀이 성장하는가?"가 진짜 성공의 기준이다.


넷째, 피드백을 두려워하지 마라. 직원들이, 동료들이, 심지어 경쟁자들이 당신을 어떻게 보는지 물어라. 그 불편한 진실 속에 성장의 기회가 있다.


다섯째, 롤모델을 제대로 선택하라. SNS에서 명언 늘어놓는 CEO가 아니라, 묵묵히 10년을 버티며 회사를 키운 CEO를 보라.



마치며

CEO라는 타이틀은 출발선이지 목적지가 아니다. 지원금, 초기 매출, 언론 보도 같은 것들은 마일스톤일 뿐 완주가 아니다. 진짜 무서운 건 허세가 습관이 되는 것이다. 한 번 어깨에 힘 들어가면 내리기가 어렵다. 한 번 거들먹거리면 겸손해지기가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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