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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원사 May 01. 2023

2. 대나무 분재가 알려준 희망

식집사로 살아가는 삼촌의 안녕

조카가 대신 전하는 삼촌의 에세이



재작년 그러니까 21년 시월에 건강하지 못한 내 육신을 개탄하며 골목담 모퉁이에서 사라진 흙먼지 회오리처럼 사회 뒤로 숨었다. 긴 겨울을 보내고 다시 봄으로 이어지는 바람은 다소 훈풍이었으므로 기운을 차려야 했다.


오롯이 혼자인 내가 이럴 때 떠올리는 것은 호시(슈나우저)이다. 17년을 곁에 있었던 녀석. 2019년 6월 어느 날 새벽 죽을 몸으로도 화장실로 가서 결국 긴 호흡으로 저 하늘 별이 되었다. 지금도 녀석은 내게서 멀어짐은 생각도 안 하고 그 별들 사이를 산책하듯이 쫄랑거리며 걸어가고 있다.


피폐한 지금의 몸과 정신으로 강아지를 돌보기는 힘들 것 같아서 생각한 것이 화분이다. 그중에 대나무가 있다.


아파트 실내에서 키우기 위해서는 크기에 한계가 있으므로 작은 분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조바심 내지 않고 기다리듯이 찾던 중에 만난 *분재로 된 오죽 한 촉.


나는 분재로 강제적으로 작게 키울 생각은 없기에 집 환경에 적응 시기를 두고 나서 더 큰 화분에 옮겨주었다. 그 결과인지 힘이 생겨서 마치 사극에 *정절녀의 품에서 뽑은 은장도 같은 비장한 것이 보이기도 한 듯한 잎들로 안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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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여름의 녹음이 지쳐있음을 일깨워주는 것처럼 가을이 떨어졌다. 모퉁이마다 소복이 쌓여있는 낙엽들을 쓸고 간 바람이 시릴 때 월동을 준비했다. 겨우내 주기마다 냉기 없는 물줄기로 샤워시켜 주었다.


다시 밖으로 내놓은 봄에는 새 순들이 뾰족뾰족하게 가지 곳곳에서 돋아서 네 잎처럼 세 잎의 잎새들을 펼치기 시작했다. 아기 손을 고사리 손이라고 말들 한다. 내게는 이 가시처럼 예리하기까지 한 그 새순들이 고사리 손과도 같이 여리고 보드라이 보여 동네 회관에 모여있는 분들께 이 보라고 얼마나 예쁘냐고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기도 했다.




그렇게 한 해를 보내고 다시 겨울이 되었던지 유칼립투스가 찬기를 이기지 못하고 시들어버림을 보고서야 동절을 인지했다. 다른 화분들은 강제 노지 월동을 시켰지만, 대나무 화분은 실내로 옮겨 들여왔다. 하지만 계절이 깊어질 때까지 가끔 눈길이 닿을 때만, 화분에다 물 한 컵 부어주고 또 그랬고 또 그랬다.


나의 건강이 온전하지 못하여서 바깥 풍경은 상상하지도 못하고 있을 무렵, 뉴스 끝자락에 들려오는 봄을 암시하는 듯한 다음 날의 기상 예보를 듣고서야 화분을 쳐다보았다. 그것은 내 몰골을 투영이라도 하는 것처럼 줄기를 앙상하게 버려둔 잎들이 메말라 떨어져 있었다.


내 의식 저편 한 곳 자리하고 있는 희미한 생명의 의지와도 같이 간신히 붙잡고 있는 서너 개의 잎새도 위태로웠다. 그 형태를 보고서 고통스러워할 기력도 없는 나를 보았다. 짐승도 식물도 모두 생명이며 같은 공간에 공존하는 것으로 공동체이다. 개를 키울 때 보았다. 분명 저하고 싶은 것만 하고 요구하는 것 같았지만, 분위기를 감지하고 있었으며 내 기분이나 컨디션을 알고 있는 것을. 식물 너 또한 그렇구나. 온전한 내가 이렇게 될 때까지 두었다면 아마도 벌을 받았을 것이라는 자괴감이 들었다.


정신을 차리라고 나에게 심폐소생술이라도 하듯이 영양제를 꽂아주고 매일 아침저녁으로 물 주기를 게을리하지 않고 바라보며 옆에 앉아있었다. 한동안 아무런 싸인이 없었다. 그래도 그것을 그칠 수 없었던 것은 매달려 살려달라고 아우성치는 것 같은 서너 개의 잎새들이 있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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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년 4월 초, 노안에 안경 없는 눈으로 봉 때 긴가민가 할 정도의 작은 녹색 티 같은 싹눈을 확인하고서 감사해서 기뻐서 시작했던 글이었다. 그 사이 또 삶의 서러움과 시련을 맛보게 되어 비틀거리는 몸처럼 흔들리는 정신으로는 이 글을 이어갈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세 잎들이 활짝 펼쳐지면 내게 우레와 같은 응원의 박수를 쳐줄 것 같다는, 다 잘 될 것 같다는 마음이 돋아나 내 몸에 감고 있는 사슬이 풀어져 봄바람 속에 녹아 사라질 것이라고 믿어 버린 것, 나의 온 희망이 되어 버린 것이, 오죽 한 촉 한 분.



지금 4월 30일,


목련꽃이 걱정스러운 곳에서 다시 바람이 불면 감싸 줄 이불을 꿰맬 수 있는 바늘 같던 것에서 엄지를 펼치고 있었으며 


목련꽃이 시름 잊고 지고 나면 따뜻한 바람과 같이 손뼉 칠 것이다. 다시 일어설 수 있다고, 포기하지 말자고.




*분재 : 화초나 나무를 화분에 심어 가꾸는 원예기술

*정절녀 : 혼인 전에 약혼자가 죽었을 경우 그 뒤를 따라 죽는 여자 및 스스로 목숨을 끊음으로서 포악한 자에 항거하는 미혼녀 (출처 : 지식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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