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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옐로 Mar 26. 2022

순례자의 도시를 걷다

바르셀루스(Barcelos)

 정처 없는 이에게는 바람 같은 도시가 필요하다. 여행자란 때로 머물지 않고 스쳐 지나가는 곳에서 위로를 얻기도 하는 법이다. 꽤 오랜 시간 이국을 떠돌며 생긴 호기심 중 하나는 여행자들이 관심을 거두는 도시를 유심히 찾아보는 것이다. 포르투갈에서는 바르셀루스가 그런 도시 중의 하나였는데 이곳은 주변의 유명한 관광 도시들에 둘러싸여 도대체 눈에 띄지 않는 도시였다. 이방인의 시선을 사로잡을만한 눈요기가 없으니 시간이 촉박한 현대의 여행자라면 거의 찾지 않는 곳이다. 그런데 사실 이곳은 오래전부터 산티아고로 향하는 순례자들이 거쳐 가는 요지였다. 그래서인지 이 도시에서는 어딘가 들뜬 방랑의 분위기가 느껴진다. 마침 어디론가 떠나기 좋은 어느 가을날이었고, 도착하자마자 떠날 준비를 하는 곳이라면 나는 언제든 기꺼운 마음으로 향하는 것이다.     


 그로부터 몇 년 전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던 아일랜드 출신의 중년여성을 만난 적이 있다. 나는 인근을 여행 중이었는데 숙박비가 저렴한 곳을 찾다 보니 순례자들이 주로 묵는 알가르베를 가게 되었다. 우연히 만난 그녀에게 어쩐지 순례자란 무엇인지에 대해 물었고, 그날 밤의 하늘처럼 텅 빈 내 질문에 그녀는 조용히 웃음을 지으며 우리 모두가 순례자라고 말했다. 마치 그 순간 캄캄한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별똥별이 떨어진 기분이었다, 이윽고 나는 잠시 생각하다 말없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후에 집에 돌아와 잠언 같은 그 말을 포스트잇에 써두고는 책장 위에 조용히 붙여두었다. 그리고 수년 전 적어둔 그 잠언을 나는 바르셀루스에서 다시 떠올리는 것이다.     


 바르셀루스는 포르투갈의 상징, 바르셀루스의 수탉 이야기가 태어난 곳이다. 전설은 중세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스페인 북부 갈리시아 지방 출신의 어느 순례자는 산티아고로 향하는 도중 바르셀루스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지만 이곳에서 그만 살인 누명을 쓰고 교수형을 당할 위기에 처한다. 그리고 교수형에 처하기 전날 밤, 만찬을 즐기던 재판관 앞에서 순례자는 자신의 결백을 호소한다. 자신이 결백하다면 재판관에 앞에 놓여있던 죽은 닭이 살아나 목청껏 울 것이라며 말이다. 그리고 교수형에 처해지기 직전, 정말로 죽은 닭이 살아나 크게 울고, 순례자는 극적으로 풀려나게 된다. 그 후 순례를 마친 순례자는 다시 바르셀루스로 돌아와 기념비를 지었다고 한다. 수탉의 전설이 익살스러운 그림으로 새겨진 그 기념비는 현재까지 바르셀루스의 상징과도 같다.       

수탉 전설에서 수탉은 부활한 예수그리스도를 상징한다


 바르셀루스의 마당과도 같은 포르타노바 광장 에 들어서면 다채색의 커다란 수탉 조각상이 이방인을 맞아준다. 울긋불긋한 수탉 조각상의 모습은 유쾌하기도, 만화처럼 우스꽝스럽기도 하지만 전설에 기대어 무엇보다 이상한 마력이 있음을 실감한다. 카바도 강(Rio Cavado)을 따라 바르셀루스 다리로 향한다. 신성한 에너지는 강을 따라 흐르고 있다. 멀리 보이는 바르셀루스 다리 위로는 중세의 순례자들이 걸음을 재촉하고 있고, 어느새 가까이 다가오니 현대의 순례자들로 바뀌어 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라는 것을 나는 그제야 다리 위에서 멈춰 서서 탄식하듯 실감한다. 그녀의 잠언처럼 우리 모두는 순례자들이다. 길 위에서 헤매고, 길을 찾고, 길을 떠나야 하는 우리 모두는 순례자들이다. 그러한 신성한 이야기가 바르셀루스, 그곳에 있었다.


카바도 강을 가로지르는 이 다리 위에 우리의 삶이 있다


바르셀루스(Barcelos)

포르투갈 브라가 주에 위치한 도시. 산티아고 순례자길 중 포르투갈 길에 위치해 있으며, 포르투갈의 국가 상징으로 사용되는 바르셀루스의 수탉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섬유 산업이 발달했으며, 유네스코 창의 도시 네트워크 (UNESCO Creative Cities Network) '공예, 민속 예술' 분야에 가입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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