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마랑이스(Guimarães)
비가 내린다. 주제 사라마구의 책 ‘포르투갈 여행’에서처럼 또다시 비가 추적거린다. 적어도 내게 포르투갈의 명물은 안개와 바람과 비다. 새벽녘에 낀 자욱한 안개와 심심찮게 내리는 비 그리고 세차게 부는 바람은 어느덧 포르투갈의 상징이다. 그래서 그의 책 속, 심심찮게 보이는 비가 내린다는 문장에는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것은 달리 말할 것 없어서 던져두는 하나의 묘사에 불과하다. 그래서인지 책 속의 여행자인 작가 자신에게도 아무런 훼방이 되지 못한다.
기마랑이스를 찾던 날, 그렇게 비가 내렸다. 나도 짐짓 그 책 속의 여행자처럼 비를 보았다. 하지만 오랜 시간을 달려 도착한 여행지에서 맞닥뜨린 비는 내겐 커다란 실망이었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차창 밖의 비를 끔찍하게 보고 있었다. 그리고 문득 누군가의 잔뜩 웃는 얼굴이 윈드실드로 쑥 들어왔다. 그는 차에서 내린 내게 기마랑이스 성은 저쪽이며 떠날 때는 반대쪽으로 나가라고 일러주었다. 다짜고짜 물어보지도 않은 답변에는 스스로 만든 궁색함만 가득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바짓춤을 뒤져 그에게 50센트를 쥐어주었다. 그러니까, 포르투갈의 초대왕, Alfonso Henrique가 태어났다는 기마랑이스 성에서 처음 만난 사람은 빗속의 걸인이었다.
도시의 전경이 내려다 보이는 기마랑이스 성에 오른다. 이곳에서 초대 왕이 태어났다는 사실을 떠올리지 않는다면 이방인의 눈에는 사실 특별할 게 없는 작은 성이다. 망루에서 도시를 한번 굽어본다. 북부 도시 특유의 서늘함이 공기에 서려 있다. 저 멀리 빗속의 걸인은 여전히 관광객들에게 공연한 사실을 친절히 일러주고는 동전을 청하고 있다. 성 앞에는 초대 국왕이 세례를 받았다는 전설을 지닌 예배당이 있다. 가이드를 대동한 관광객들 옆에 멀거니 서 있다가 초대 왕은 12세기에 태어났고, 예배당은 13세기 지어졌으니 세례를 받았다는 전설은 그저 전설일 뿐이라는 이야기가 귀에 흘려 들어왔다. 나는 고개를 한번 끄덕였다. 그 아래 15세기에 지어졌다는 브라간사 공작의 왕궁을 둘러본다. 대통령의 관저로도 사용된다는 이곳에서는 벽에 걸린 거대한 태피스트리가 인상적이다. 어두운 조명 속 태피스트리 위에는 오래전 포르투갈 항해의 역사가 수놓여 있다.
‘Aqui nasceu Portugal’ 포르투갈이 이곳에서 태어났다는 문장이 도심까지 이어지는 성벽 위에 붙어 있다. 말하자면 이곳의 랜드마크인 곳이다. 내가 기마랑이스를 찾은 이유는 바로 이 문장 때문이다. 초대왕이 태어난 곳이자 포르투갈 왕국이 시작된 곳으로 포르투갈 사람들은 그래서 이 도시를 포르투갈의 요람으로 부르고 문장은 등기소처럼 그것을 증언한다.
그리고 문득 그 문장 밑에도 걸인이 있다. 여전히 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고, 걸인은 위에 걸린 문장이 무색하게 늙고 병든 얼굴로 무심히 앉아 있다. 사실 걸인을 마주치는 것은 투명 인간을 마주치는 것과 같다. 누구도 그들을 의식하지 않으며, 말조차 걸지 않기 때문이다. 유명 관광지에서 마주치는 걸인들은 더욱 그렇다. 관광객들은 끊임없이 지나가고 그는 하염없이 멈춰있다. 나는 어쩐지 그에게 다가가 주머니에 든 1유로를 그에게 건넨다. 그리고 다시 한번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는 내가 포르투갈어를 전혀 못하는 외국인이라고 생각했는지, 웃음을 지으며 어설픈 영어로 thank you라고 말한다. 나는 그 순간이 몹시 어색해 문득 하늘을 올려다본다. 그도 어쩐지 나를 따라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본다. 그러자 불현 듯 비가 멈추고 파란 하늘이 드리워지기 시작한다. 포르투갈의 첫 번째 왕이 태어났다는 기마랑이스에서, 처음 보는 햇빛이었다.
기마랑이스(Guimarães)
포르투갈 북부 브라가(Braga)주에 속하는 도시. 흔히 포르투갈의 탄생지라고 불린다. 계획적인 도시화 과정을 거쳐 기마랑이스의 역사적인 구시가지가 잘 보존되어 있고,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10세기에 건축된 기마랑이스성과 15세기에 세워진 브라간자 공작궁과 올리베이라 성모교회 등 역사적 건축물들이 주요 명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