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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옐로 Mar 23. 2022

익숙함이 낯섦보다 찬란하다

브라가(Braga)

 때로 어떤 익숙함이 낯섦보다 찬란할 때가 있다. 여행에 관해서라면 더욱 그렇다.  나는 브라가에서 냄새에 관해 그런 일을 겪은 적이 있다. 


 오래도록 기억하는 냄새가 있다. 오래전, 학교에서 집에 돌아오니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밖으로는 비가 내리고 있었는데, 어린 마음에 무서워서였을까. 벽에 걸린 어머니의 낡은 벨벳 치마를 끌어안고 냄새를 맡은 적이 있다. 나는 엄마 품에 안긴 아기 침팬지 한 마리처럼 곧장 편안해졌다. 그리고 그 냄새는 내 가슴에 그대로 박혔다. 말하자면, 나는 종교가 없는데도 세상의 평화 같은 냄새를 이국의 외딴 도시 브라가에서 맡은 적이 있다.  브라가는 포르투갈의 대표적인 종교도시로 포르투갈에서 가장 오래된 대성당인 브라가 대성당과 높은 언덕 위에 지어진 성지순례지, 봉 제수스 두 몬트(Bom Jesus do monte)가 유명한 곳이다. 나는 가장 오래된, 이라는 수식어가 주는 끌림 때문에 브라가를 찾게 된 것인데, 우연히도 오래도록 잊고 있었던 냄새와 조우하게 된 것이다.    

  

 포르투갈의 가장 유명한 관용표현 두 가지는 모두 이 종교도시 브라가와 관련되어 있다. 한 가지는 오래된 무언가에 대해 농담할 때인데, 주로 브라가 대성당(Sé de Braga)보다 오래됐다거나, 브라가 대성당만큼 오래됐다고 말한다.  나머지 하나도 재미있는데, 누군가 문을 닫지 않고 들어왔을 때, 브라가에서 왔느냐고 농담하듯 핀잔을 주는 것이다. 전쟁이 없던 16세기에 지어진 브라가 성벽의 아치에는 문을 만들지 않았다고 하는데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 브라가 주민들은 문을 닫지 않는 자로 불리게 됐다고 한다. 그러니까 모두, 오래된 이야기다.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파이프오르간



 브라가 대성당은 포르투갈 건국보다 오래된 최초의 대성당이다. 나라보다 오래된 성당이니, 오래됨의 표상으로 불릴만한 곳이다. 브라가 대성당을 찾은 날에는 여름의 끝을 알리는 비가 내렸다. 거리는 한산했고, 날씨는 쌀쌀했다. 우리는 숙소에서 걸음을 오래도록 재촉해 대성당에 도착할 수 있었다. 비가 내려서인지 대성당 내부에는 관광객도 거의 없었다. 나는 대성당의 백미라 불리는 파이프 오르간을 무심하게 올려보다가 문득 그 냄새를 맡았다. 마치 그 순간 파이프 오르간에서 소리가 울리는 느낌이었고, 그때 공교롭게도 딸아이가 대변을 보겠다고 말했다. 아마도 내가 그 냄새를 맡았던 때가 지금의 내 아이의 나이와 그리 차이가 나지 않았을 것이다, 화장실로 향하는 동안 뭐 그런 생각들을 했던 것 같다.  


 그날처럼 오랫동안 비가 내렸다. 화장실에서 돌아왔을 때, 파이프 오르간에서는 어떤 장엄한 교회 음악이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아주 오래된 그 냄새가 대성당에 자욱하게 퍼지고 있었다.  집 밖에서 화장실 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아이가 무슨 일인지 편안하게 대변을 봤다. 나도 다시 어쩐지 그 옛날처럼 벨벳치마에 파묻힌 기분이었다. 낯설고 낯선 이국의 생소한 도시 브라가에서, 나는 잊고 있던 아주 오래된 냄새를 맡은 적이 있다. 그것은 어쩌면 오래되고 오래된 이 도시가 주는 편안함 때문이었을까.  나는 브라가에서라면  여행 중 조우하는 익숙함이 낯섦보다 찬란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당신도 아마 브라가에 온다면, 나와 같지 않을까.



브라가(Braga)

포르투갈 북부 도시로 거주 인구 규모로는 7번째, 면적 크기로는 3번째 큰 도시이다. 북쪽에는 카바두강이 흐르고 동쪽, 남쪽에 피쿠스 산맥과 카르발류스 산맥이 있다. 역사가 오래된 도시로 11세기 건축이 시작된 브라가 성당이 있고,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봉 제수스 두 몬트 성지가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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