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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옐로 Mar 21. 2022

너무 늦지 않은 사랑을

알코바싸(Alcobaça)

 어느 봄날, 알코바싸 수도원 안 페드루와 이네스의 석조무덤 옆에 선다. 나는 이제 '이네스는 죽었다(Inês é morta)'라는 표현을 떠올린다. 무언가를 하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포르투갈의 이 유명한 관용표현은 때로 무척 안타깝지만, 더 늦기 전에 마음속에 감춰둔 것을 실행으로 옮겨야 한다고 사람들을 채근한다. 차디찬 석조 무덤 옆에서 나는 곰곰이 생각한다. 더 늦기 전에 무엇을 해야할까. 그것이 무엇이든 앞으로도 하나씩 하나씩 마음속에 감춰둔, 아직 하지 못한 것을, 해야겠다고 다짐한다. '이네스가 죽기 전'에 말이다.


이네스는 죽었다


  사랑에 관한 이야기라면 포르투갈판 로미오와 줄리엣이라고 불리는, '페드루와 이네스'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14세기 페드루 1세 왕자는 아내의 시녀였던 이네스와 사랑에 빠지고 만다. 아내가 죽자, 둘은 비밀리에 결혼까지 하게 되고, 금지된 사랑을 이어나가지만 이를 못마땅하게 여겼던 페드루의 아버지, 알폰수 4세의 의지에 따라 이네스는 암살자들에 의해 끔찍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이후 알폰수 4세의 사망 이후 왕으로 즉위한 페드루 1세는 이네스를 암살한 자들을 찾아내 죽이는 한편, 땅에 묻힌 이네스의 시신을 발굴해 여왕의 모습으로 치장시키고 모든 신하들에게 하여금 그녀의 손등에 키스하게 한다. 그리고 성대한 장례식이자 너무 늦은 여왕의 즉위식을 연다. 이후 페드루는 알코바싸 수도원에 석조 무덤을 만들어 이네스의 시신을 이전했고, 본인도 사후 이곳에 묻혔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 가장 피비린내 나는 사랑 이야기의 종착지가 이곳 포르투갈 알코바싸 수도원에 있는 것이다. 


 봄날 코임브라의 어느 뒤안길을 걷다가 하얀 눈처럼 내린 아몬드 꽃나무를 발견한다. 이베리아 반도를 포함해 남유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몬드 나무는 우리나라의 벚꽃과 유사해서 마치 벚꽃을 볼 때와 유사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봄에 피고 금방 지며, 하얀 꽃을 틔운다는 점에서 벚꽃과 아몬드꽃은 사실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실제로도 아몬드나무와 벚나무는 식물학적으로 같은 계통이라고 한다. 나는 아몬드 꽃나무 앞에서 달콤한 봄을 맡고 있다. 그런데  부끄럽게도 결혼 이후에는 아내에게 꽃을 선물한 적이 거의 없다는 생각에 미친다. 잠시 주저하다 이윽고 땅에 떨어진 흰눈 같은 꽃잎들을 한손에 넘치도록 열심히 줍는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한다. 집에 가져가 아내가 없는 사이 화장대 위에 몰래 펼쳐놓고, 그 옆에는 이렇게 메모를 남겨둘 것이다. 


아몬드꽃의 꽃말 : 진정한 사랑



알코바싸를 찾던 날은 벼룩시장이 열린 날이었다

알코바싸(Alcobaça)

포르투갈 중부 레이리아(Leiria) 주에 위치한 도시로 포르투갈의 초대 왕인 아퐁소 엔리께스(Afonso Henriques)가 무어인으로부터 산타렝(Santarem)을 정복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성당을 짓기로 결정한 후 유명해졌다. 이 성당은 나중에 가장 웅장한 고딕 기념물 중 하나인 알코바사 수도원으로 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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