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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옐로 Mar 18. 2022

미란데스어를 아시나요

미란다 두 도우루(Miranda do Douro)

 언어에도 색깔이 있다. 미란데스어는 도우루강을 닮아 짙고 어두운 초록색이다. 말하자면 사람들이 초록색 소리를 내뱉는 도시, 나는 포르투갈의 북동쪽, 스페인과 맞닿은 작은 도시, 미란다 두 도우루에 있다. 깎아지른 전망대에서 그대로 멈춘 것 같은 모습의 도우루 강을 내려다본다. 구불구불한 초록의 강은 멀리 스페인 중북부에서 여행을 시작해 이제 국경 마을인 이곳에서 잠시 쉬어가는 중이다. 강은 앞으로 온 만큼을 더 가야 그토록 원하던 대서양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전망대에서는 사람들이 앞으로 바다가 될 강을 보며 감탄사를 내뱉고 있다. 그리고 나는 여기에서 평생 들어본 적 없는 초록색 언어에 귀 기울여 본다.     


 미란데스어는 두 나라 언어가 만든 자손 언어다. 스페인 아스투리아 지역의 언어와 포르투갈어가 합쳐진 것으로 포르투갈에서 두 번째 공용어지만 이 지역에서만 겨우 쓰이는 탓에 사실상 사멸 위기에 있다. 이는 친절한 기념품 가게주인의 씁쓸한 말이다. 사멸 위기에 있는 언어라는 건 어쩌면 멸종 위기에 처한 동식물처럼 느껴진다. 얼마 남지 않은 것이 풍기는 감정, 쓸쓸함은 동식물뿐만 아니라 언어에도 똑같이 적용된다는 것이 새삼 놀랍다. 그래서인지 그녀가 말하는 미란데스어에는 어딘가 보호본능을 일으키는 무엇이 있다.  


    

 미란데스어에 관해 얘기하다가 가게주인이 전쟁 이야기를 시작한다. 인접한 나라들 대부분 그렇듯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오래도록 지난한 전쟁을 했다. 이곳도 격전지 중 하나였다고 한다. 1711년 국경 마을은 스페인 카스티야 군대에 꼼짝없이 포위되어 있었다. 마을 사람들 사이에는 배고픔과 절망이 전염병처럼 번져가고 있었고 이제 곧 마을은 함락되기 직전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귀족 복장을 한 소년이 마을 사람들 앞에 나타나고 용기를 북돋기 시작한다. 용기를 얻은 사람들은 마침내 스페인 군대를 내쫓는 데 성공하지만 이후 소년은 연기처럼 사라진다. 마을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승리를 선물한 그 소년이 바로 예수라고 생각하고는 기적같은 승리를 기념하여 소년 예수상을 만들기 시작한다. 이 마을의 상징과도 같은, 어린이 예수상이 태어난 배경이다. 그리고 가게 주인은 전쟁에서 살아남은 것은 사람뿐만이 아니라고 한다. 미란데스어도 그렇게 기적처럼 살아남은 것이다.     



 유람선을 탄다. 왼쪽의 기암절벽은 스페인이고 오른쪽은 포르투갈이라고 한다. 곡예비행을 하듯 유람선은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중간인 도우루 강을 미끄러져 간다. 유람선의 가이드는 완벽한 스페인어와 더 완벽한 포르투갈어를 번갈아 말한다. 마치 왼쪽벽에 유람선이 가까워지면 스페인어를, 오른쪽벽에 가까워지면 포르투갈어를 구사하는 것 같다. 그녀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각각 스페인 사람, 포르투갈 사람이라고 한다. 그리고 자신을 절반이라고 소개하며 그제야 능청스럽게 몇 마디 미란데스어도 말한다. 그녀의 말에 앉아있던 관광객들이 모두 웃는다. 강의 한쪽 곁에는 독수리 둥지가 보인다. 가이드가 한참을 설명하는 사이 독수리 한 마리가 건너편 절벽에서 한참을 내려오더니 둥지에 걸터앉는다. 그리고는 둥지 위로 하얀 입들이 풍선처럼 커졌다가 작아지기를 반복한다. 새끼들이다. 포르투갈에서 날아와 스페인 절벽에 둥지를 튼 독수리에게는 국경이 존재하지 않는다. 마치 미란데스어처럼 말이다. 그러고보니 미란데스어는 그저 도우루 강 위에 달뜬 초록의 언어일 뿐이다. 



미란다 두 도우루(Miranda do Douro)

포르투갈 북부 브라간사(Bragança) 주에 위치한 국경 도시로 스페인과 도오루 강을 사이에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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