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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옐로 Mar 17. 2022

그리움을 채집하는 곳

딸라스날(Talasnal)

 죽은 사람은 결국 그리운 법이다.      


 몇해 전 외할머니를 땅에 묻던 날이 기억난다. 아주 멋진 봄날이었고, 공기는 양털처럼 부드러웠다. 누군가가 죽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구름 한 점 없이 푸른 하늘이었다. 그때 나는 어쩐지 앞으로는 그리움을 채집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것을 고이 접어두었다가 누군가에게 두 손 가득 선물하는 것이다. 나는 물방울처럼 그 순간을 고요히 기다린다.      


 외딴 나라의 외딴 도시. 그리고 허름한 아파트. 창밖에 시선을 아무렇게나 던져두고 설거지를 한다. 비는 벌써 나흘째 멈추질 않는다. 창밖의 옹벽에서는 누군가가 가져다 준 닭가슴살을 고양이들이 먹고 있다. 비 오는 날 길고양이의 눈은 사람처럼 위태롭다. 아이는 그것이 불쌍하다고 했다. 이제는 바깥이 필요할 아이는 수족관처럼 축축한 집안에서 물고기처럼 거실을 배회한다. 어쩐지 나는 그것이 자주 안타깝다. 비가 내리다 어떤 순간이 내 마음에 빗금을 치더니 누군가의 편지가 떠오른다. 

 이 나라의 특산물은 그러니까, ‘사우다드(Saudade)’ 이다.     


 안드레, 당신이 떠났다고 들었어요. 나는 당신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모르죠. 그렇지만 아마도 이 편지가 당신을 찾을 거예요. 나는 오래전 당신을 만났어요. 당신은 항상 단순했지만, 사물의 복잡함을 잘 이해하고 있었죠. 당신은 무려 7개가 넘는 직업을 가졌지만, 항상 모든 직업에 열중했어요. 당신의 마을이 고립됐다고 해서 결코 당신을 세상으로부터 고립시킬 수 없었어요. 인간이란 당신의 영혼을 닮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느낄 수 있어요. 안녕. 


 포르투갈 중부지방 로우싸 산맥에 자리한 딸라스날(Talasnal)은 이방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편암 마을이다. 편암은 줄무늬가 있는 편평한 돌을 일컫는데 그러한 돌로 만들어진 예쁘고 앙증맞은 집들이 레고처럼 옹기종기 모여있다. 손바닥처럼 작고 조밀한 마을은 오렌지 빛깔의 어떤 정취를 뿜어낸다. 나는 물끄러미 집을 살펴보다가 남몰래 ‘사우다드’라고 소리 내어 본다. 생경한 이 외국어에는 어쩐지 인간이라면 누구나 익숙해할 감정이 서려 있다.     


 마을 초입에는 손바닥만 한 광장이 있다. 그곳에서는 샘처럼 깊은 눈망울을 가진 고양이들을 만날 수 있다. 마치 그들은 광장에 모여 군중대회를 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모두가 제각각 태도로 딴청을 부리는 중이다.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마주한 고양이들의 태연자약한 모습에 실소가 나온다. 고양이와 어울리지 않을 마을이 있겠냐마는 이곳은 더욱 그렇다. 미로같이 좁은 골목길 사이로 귀족같이 우아한 고양이들이 자주 보였고, 그들의 윤기있는 엉덩이가 햇빛에 자주 반짝였다. 딸아이가 좁은 골목길에서 그런 고양이들을 쫓아다녔는데, 그건 어쩐지 근사한 풍경이었다. 


    

  선술집에서는 티아구라고하는 현지인으로부터 마을에 관해 짧은 이야기를 들었다. 그것은 편암 마을을 일군 어느 남자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의 이름은 안드레. 목자였고 석공이었으나, 그는 그가 가진 직업으로 정의될 수 없는 사람이라고 했다. 어쨌든 그는 편암 마을에서 태어났고, 편암 마을의 보존을 위해 평생을 헌신한 사람이었다. 관광 홍보 차원의 이야기처럼 들려 사실 대수롭게 들리진 않았으나, 후에 나는 누군가가 안드레에게 쓴 편지를 우연히 인터넷에서 찾아보고는 조그만 침묵에 빠지고 말았다.      


 전화 속 첫 인사말 같은 편지의 첫 문장이 내 마음을 일렁였기 때문인데, 현지인이 말한 그는 그러니까, 이미 이 세상에 있지 않은 사람이었다. 안드레라는 사람은 지금의 편암 마을을 일궈낸 장본인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 자체이기도 했고, 혹은, 인간이라기보다 자연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그는 그래서 과거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으며, 미래에도 있을, 어떤 돌 같은 사람으로 들렸다. 아니, 어쩌면 ‘사우다드’처럼 손에 잡히지 않는 어떤 정서일 수도 있다.      


 편암 마을의 돌은 무려 선사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한다. 지금 저 집을 이루는 돌은 선사시대 원시인의 투박한 손으로 조리도구가 되었다가, 시대가 흘러 영토의 주인이 바뀌며 로마인의 손과 아랍인의 손에 흩어지고 부서지고는 어느덧 중세에 이르러 한동안 정주한다. 편암 마을이 제대로 정착한 것은 중세였다. 그리곤 돌은 다시 흩어지고 부서지기를 반복하며 현재에 이른다. 그리고 돌은 내가 지금 만지고 있듯 여전히, 그대로이다.


      

 자세히 보니 돌 사이로 무언가가 새어 나온다. 나는 가까이 다가가 손가락으로 그것을 떠본다. 끈적끈적한 그것은 놀랍게도, 당신과 나를 잇는 그리움이다. 나는 마치 원시인의 마음으로 허기를 달래듯 그것을 잔뜩 입에 집어넣고 주머니에도 구겨 넣는다. 언젠가, 하늘나라에서 만날 누군가에게 두 손 가득 선물하기 위한 것처럼.

 창밖으로는 여전히 누군가의 눈물 같은 비가 흘러내리고 허겁지겁 먹고 있는 고양이의 눈에는 그렁그렁 애수가 흐른다.      


 포르투갈의 정서는, ‘사우다드(Saudade)’라고 한다.      


              

딸라스날 (Talanal)

포르투갈 중부 로우싸 산맥에 위치한 편암 마을 중 가장 특색있는 마을 중 하나. 한 때 양치기들의 마을이었으나 오늘날은 마을을 재건한 외부인들이 이 곳을 제 2의 고향으로 삼고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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