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마르(Tomar)
육지 위에는 바다가 흐르고 있고, 곧바로 커다란 태양이 타오르고 있다. 그것은 아주 기묘한 풍경이었다. 그 속에서 나는 무더운 한여름 범선에 실려 검푸른 대서양 망망대해를 표류하고 있었는데, 가늘게 뜬 눈 사이로는 바닷바람에 힘차게 펄럭이는 삼각돛이 보였다. 그리고 하얀 삼각돛에는 그리스도 기사단의 붉은 십자 문장이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그것은 투마르에서 돌아온 사흗날 꾼 꿈이었다.
4월의 어느 봄날 금요일 오후 나는 투마르에 있었다. 투마르는 포르투갈 영토의 정중앙에 위치한 내륙도시로 템플기사단의 마지막 성소이자 그리스도 수도원이 있는 곳이다. 포르투갈 문화의 정수라 불리며 198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도 선정된 이 수도원은 그러나, 봄날의 금요일 오후인데도 코로나 때문인지 관광객이 거의 없었다.
젊은 티켓 판매원은 아예 바깥에 나와 심드렁한 표정으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마스크는 아무렇게나 턱에 걸쳐져 있었다. 나는 담배를 피우는 그에게 다가가 오히려 미안해하며 티켓을 사겠다고 말했는데 그가 그제야 담배를 비벼끄며 아무 말 없이 창구로 나를 안내했다. 한눈에 보기에도 만사가 귀찮아 보였다. 티켓을 받고 나는 잠시 주저하다가 능청스레 그에게 물었다. 여기서는 무엇을 자세히 봐야 하죠. 나의 질문이 뜻밖이었는지 그는 잠시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창너머 티켓 판매원에게 그런 질문을 한 사람들은 거의 없었던 모양이다. 잠시 창을 사이에 두고 침묵이 흘렀다. 이내 그가 자리에 고쳐 앉더니 입을 열었다. 물론 샤롤라(Charola)죠. 그리고 마누엘식 창문도 빠질 수 없죠. 그가 어쩐지 생기있는 웃음을 지어 보였다. 내 뒤로 티켓팅을 기다리는 관광객도 없는데다 수도원에 대해 별로 아는 게 없어 나는 조금 더 설명을 부탁했다. 그러자 그는 꽤 근사한 답변을 내놓았다.
샤롤라는 빛나는 태양이자 세계의 배꼽이에요. 마누엘식 창문에서는 대서양에서 건져놓은 것처럼 바다 내음이 날 거예요. 잘 맡아보면요. 한마디로 각각 태양과 바다라고 보면 되겠네요. 이 수도원은 태양과 바다를 품고 있답니다.
샤롤라는 수도원의 상징이다. 12세기에 기사단이 직접 지은 예배당으로 내부에는 외부에서 보듯 원형홀이 있고 그 중앙에는 팔각형의 성소가 있으며 십육면의 벽면들은 장엄한 프레스코화를 두르고 있다. 아마도 당시 기사들은 말을 탄 채 이 원형홀을 천천히 돌며 기도를 올렸을 것이다. 사실 유럽 최서단의 소국인 포르투갈이 대항해시대를 열며 맹위를 떨쳤던 것은 다름 아닌 기사단 덕분이었다. 바로 이곳에서 십자군 전쟁의 영웅이었던 템플기사단이 우여곡절 끝에 그리스도 기사단으로 이름을 바꾸고는 포르투갈의 부흥을 이끈 것이다. 청년이 말한 태양이자 배꼽은 그런 의미였을 것이다.
마누엘식 창은 수도원 사제단 회의장에 있는 창문으로 포르투갈의 대항해시대를 그대로 현현하고 있다. 말하자면 중세 유럽을 지배한 전형적인 고딕양식에 바다에서 건져 올린 느낌을 슬쩍 가미한 것이다. 이 기괴하고 기묘한 창문장식을 보고 있노라면 건물 전체를 마치 바다에서 건져 올렸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데 그도 그럴 것이 밧줄과 해초, 십자가와 방패, 혼천의, 그리고 창문을 설계한 이의 두상 등을 한데 섞어 장식해 놓았기 때문이다. 마치 영화 캐러비안 해적에서 보았을 법한 환상적 요소다. 이렇듯 그리스도 수도원은 태양과 바다를 품고 있는데, 사실 그것은 중세 포르투갈의 원대한 꿈을 그대로 박제한 것과 같다.
꿈 속에서 나는 범선에 실려 팔려 가는 노예였을까, 아니면 기사단의 일원이었을까. 꿈이란 것이 깨고나면 늘 그렇듯 사실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확실한 것은 그저 늘 그랬던 것처럼 태양은 높고 뜨거웠으며, 바다는 한없이 깊고 무거웠다는 것이다. 파고가 높아질수록 하늘이 닿을 듯 말 듯 내려왔고, 사방에서는 짠내가 진하게 풍겼다. 선원들의 이런저런 외침이 커졌다가 잦아지기도 했다. 모든 것이 꿈이었지만, 어쩐지 꿈이 아닌 것도 같았다. 어쩌면 그건 투마르에서 본 포르투갈의 꿈 때문이었을까.
Tom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