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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태경 Oct 10. 2021

이제 진짜 버려야 하는 갑다

발길에 채이며 떨어져 나가는 것도 아니고, 혹처럼 영 거슬리고 불편하다.

유난히 발이 편해 낡아져도 버리지 못해 한차례 접착제로 붙여 신던 운동화.

닳아진 밑창.

걸었을 많은 길.

짜슥~ 대견한 걸~




추석이 지나면서 부쩍 해가 짧아졌다.

예전 같으면 동터왔을 시간이지만 거리는 어둑하니 아침을 맞이하고 있었다.  

제법 선선해진 가을 아침.

천변길로 접어드니 등 뒤로 밝은 빛이 쪼개진다.

어제가 아무리 힘들고 어두웠어도 시간이 지나면 어김없이 새로운 태양이, 새로운 오늘이 시작된다.


오늘은 지칠 때까지 걸어보자 작정을 했다.


산길로 나있는 둘레길.

비가 잦은 탓인지 숲 냄새가 촉촉하다.

힘든 오르막 길이 있었다면 남은 건 내리막 길.  불변의 법칙


새순을 올리고 있는 철모르는 산초나무


해가 솟아오르니 뜨겁다.

물이라도 들고 나올 걸.

생각 없이, 준비 없이 너무 멀리 왔다.

삶은 늘 예고 없음이 부지기수로 반복되지 않는가.

알 수 없으니 낭패를 보는 일도 있다.

하긴, 

뻔하면 뭔 재미겠나.


지치고 힘든 것보다, 덥고 햇빛 알레르기 때문에 왔던 길을 되돌아갈  없다.

해를 피할 수 없는 천변길로 되짚어가기에는  내겐ㅜㅜ 디다.

산길을 내려가면 버스 지나는 길이 보이겠지.


잠시 벗어두었던 신발을 신는다.

집에 가면 샤워하러 들어가기 전에 미련 없이 버려야지.

닳고 낡아진 신발.


수고했네.

이제

완전히...

확실히...

미련 없이 보내려네.

잘 가게.


새 신발을 신어야 할 때다.




산둘레길 벤취에 드러누워 핸드폰에 글줄 깨작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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