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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태경 Oct 13. 2021

정한수라도 떠놓고 빌어주소

디따 아프다ㅜㅜ

하루가 지났는데도 칭칭 동여맨 붕대 속에서도 잘려 나간 손끝의 통증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가벼운 손놀림에도 상처 부위가 애리다. 아프기도 하지만 기분 더럽다.

되는 일도 없는 것 같은데 손까지 다치니 이참저참 기분이 그러하다.


이렇다 하게 종교를 믿거라 하는 것도 아니고, 점을 보러 가거나 타로 집을 드나들지도 않는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따라갔다 재미로 본 적은 있어도 그네들의 말을 혹해서 믿는 것도 아니다.

다만, 옛말에 ‘어른들 말 들어 손해 볼 것 없다’니 하지 말라는 것은 하지 않는 편이다.

그렇다고 손해 보지 않고 살아가는 영리한 사람도  된다. 고분고분 어른들 말씀을  듣는 착한 이는 더군다나 아니올시다.

그럼에도 꿈자리가 사나우면 심란하다. 특별한 일이 있는 날, 눈이 떠지면서 찜찜한 기운이 돌면 나갈 채비도 더뎌지고 굼떠진다.

오늘이 딱 그런 날이다.


일은 어제 터졌다.

달거리 때문에 다운되어있던 딸냄이 먹고 싶다 하니 아니할 수 있겠는가.

먹고 싶다는 연근 튀김과 곁들여 튀겨 낼 야채 튀김 재료를 준비한다. 그러잖아도 손끝 야무지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요리할 때 손이 빠른데, 배가 고프다니 싱크대위에서 손이 일사불란 춤을 춘다.

어따 정신을 팔았는지 타닥타닥 경쾌하던 칼질 소리가 어긋나면서 칼날이 순간 미끄러져 검지 손끝을 써억~.

금을 넘어버렸다.

전광석화처럼 손을 움켜잡고 심상치 않음을 느낀다.

피가 통하지 않나 싶게 칭칭 단디 동여매고는 하던 튀김을 마저 한다. 그때까지는 얼마 정도 다쳤는지 티를 안 내니 상처 정도를 알 턱이 없다.


빵가루 입힌 보기 좋은 연금 튀김이 기름에서 나오자마자, 바삭바삭 씹으며 맛있음을 얼굴 근육을 총동원해가며 표현을 한다.

저리 행복할까?

그래, 아픈 게 대수겠나. 내 자식 입으로 맛나게 들어가는데.


지혈됐다 싶어서 열어 상처를 봤더니 흐미~ 징그러 분 거.

손톱의 삼분의 일은 잘려 나간거 같다. 예리하게 포를 떳다.

이쁘게 잘도 해놨으이^^ 스마일 이모티콘이라도 그려놔야 할까보다ㅎ

 소독약을 뿌리면서 욕지거리도 한 거 같다.


우리 집 상비약이나 처치 물품들은 기본 통증이며, 가볍게 째지고, 데고, 벗겨진 상처를 처치하기에 어지간히 갖춰져 있다.(이러니 더 병원을 가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이번 상처도 죽을 정도는 아니니 이제껏 그랬던 것처럼 자가치료다.

얼마간의 통증이 가시면 새살이 돋겠지. 손톱이나 제대로 나면 다행이다.

곰탱이. 미련 곰탱이.

처치한 손을 내려다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이런 일들이 생길 때마다 병원에 가지 않는다고 성화를 내며 잔소리하는 언니의 말이 이해는 간다.

ㅋ돌팔이.

내게 국한된 처치니, 쇠고랑을 안 찾지. 돈받아가며 활동했다면 벌써 빨간 줄을 그었을지도 모른다.


오늘은 지인과 타지로 출타를 했어야 하는 날이다.

전날 그 난리를 쳤으니 아침에 눈이 쉽게 떠지질 않는다. 머리도 개운하지가 않다. 나야 가도 그만, 안 가도 그만이었으니, 약속을 포기했다.

화장실에 앉아 보지도 않던 운세를 본다.

오늘의 운세에 비가 줄줄 온다.

실소와 함께, 그걸 디다보며 읽고 있는 자신이 한심해진다.


일일 통과의례처럼 서울 언니에게 전화가 왔다.

다친 손 얘기를 하면서 “어젯밤에 이상한 꿈을 꾸었잖니” 어쩌고저쩌고, 듣기에도 딱 좋지 않은 냄새가 스멀거리는 꿈이다.

결국은 심란했던 꿈은 내 흉흉한 상황에 덧대어졌다.

“그래 잘했다. 안 가길 잘했어. 그나마 다친 거로 액땜했다 쳐.”

그런 말을 하면서 언니도 웃겼나 보다.

한차례 액땜 탓으로 운빨을 마무리 짓고는

“잘하고 있어 이따 저녁에 다시 전화할게.”


ㅋ우리 아직 그럴 나이 아닌데.

내 하는 일이 정 불안하면 정한수라도 떠 놓고 안녕이라도 빌어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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