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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태경 Nov 10. 2021

다음 생에는 내 아이로 태어나세요

전화가 울린다.

물도 데워서 차도 우려 보온병에 넣어야 하고, 과일도 깎아 담아야 하고, 김밥 재료는 준비 완료. 줄 세워 펼쳐놓은 속 재료가 색색이 이쁘다.

당장은 손이 열 개라도 우는 전화를 봐줄 수가 없건만, 누구일지를 아니, 아니 받을 수가 없다.

김밥을 말던 손에서 비닐장갑을 벗겨내고, 연신 울어대고 있는 전화를 받았다.

“왜 안 와. 언제 오는 거야?”

그렇게 다짐하고 시간을 일러줬건만, 어찌 해석은 늘 본인 식대로 인지ㅜㅜ

속상해서 화도 나지만, 전화를 했을 때는 반 시간 넘게 기다렸으리라.

가기로 약속한 시간은 두 시간이나 남았는데. 것도 출발하면서 전화할 테니 나와 계시지 말라고, 다짐을 받아내는 나도 짜증이 날 정도로 몇 번을 시간을 일러드렸는데, 화부터 올라온다.(내가 어릴 적 말 안 들어 먹을 때 이런 심정이셨겠지)

마음이 쉬 다스려지지 않는 것은, 몇 해 전부터다.

뵈러 가겠다는 전화에 매번 일찍 나와 계신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그나마 다행인데, 춥고 바람 부는 날이면 얼얼해져 까칠한 볼을 보면 속이 상한다.


자식을 기다린다는 것은 특별한 여정이다.

맹목적이다.

내가 응애하고 그 몸에서 태어났을 때부터 시작된 일방통행 바라기.

내가 자식을 낳아보니 알겠다.

자식은 무모하리만치 날 바라보는 부모가 부담스러워지는 때가 있다. 말을 해도 통하지 않는다.

성년이 된 내 아이들이 그러더군.

이제 그만큼 했으면 됐다고, 잘못된 것을 다 책임지려 하지 말라, 엄마의 인생을 살라 한다.

엄마의 바라기가 부담스러운 것이다.

얘들아, 근데 말이다.

너희들이 나를 통해 이 세상에 나온 그날부터 나도 내 맘대로 되지 않더구나.

내 자리는 늘 너희들 뒤.

뭐라 하지 마라. 내 특권이다.

울 엄마도 똑같은 마음일 텐데 그걸 알면서도, 된소리를 섞어가며 잔소리를 퍼부었다. 가면서 하지 말아야지 다짐을 했건만. 이놈의 고집도 만만치가 않다.

오늘따라 바람은 웰케 부는지, 미친 눔 마냥 사정없이 떨어지고, 나뒹구는 가로수 낙엽들이 마음에 채찍질을 한다.


전화를 받고, 운동 갔던 딸아이를 불러대고, 대충 먹거리를 가방에 쑤셔 넣고, 정신없이 출발을 했음에도 한 시간이 지났다.

아니나 다를까. 1층 로비 의자 끝에 걸친 엉덩이가 금세 나올 기세로 기다림에 애가 타는 게 보인다. 쭉 빼민 목이 가엽기까지 하다.

‘에고~ 여하튼 노친네ㅜㅜ 말도 징글징글 안 먹힌다.ㅜㅜ’ 차마 딸아이 앞이라 그 말은 속으로 삼킨다.

손녀의 부축을 받으며 차에 오르는 노모의 얼굴은 밝지 못하다.

애가 탔을 생각에 아무 말도 하지 말아야지 했건만, 속사포 잔소리가 터졌다. 백미러로 비친 미안해하는 엄마의 얼굴을 보니 눈물이 나는 건 뭔 일이랴.

“저 나무들 봐요. 올해 마지막 가을을 보여드리려고 한겨. 이쁘게 물들고, 지고 있잖아. 맛난 김밥 도시락도 쌌어.”


가을날 물들어 떨어지는 나무들을 보면서 추하다고 하지 않는다.

곱고 예쁘다 한다.

사람도 그러하다.

내 나이도 가을 문턱에 있는 게 아닐는지, 엄마도 곱게 물든 단풍잎이 아닐는지. 머리 허연 엄마도, 여기저기 몸이 쑤시기 시작한 나도, 고운 가을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저무는 황혼빛도 아름답고, 곱게 물들어 떨어지는 낙엽도 근사하지 않은가.

살아계신 하루하루 얼마일지 모를 그 시간까지, 내겐 곱디고운 단풍처럼 어여쁜 내 엄마이다.

(이 글도 읽고 계시겠지요. 많은 시간 속을 무쟈게 섞였지요. 다음 생엘랑은 내 아이로 태어나세요. 내게 베풀어주신 사랑만큼은 자신 없지만, 보답해드릴게요. 사랑합니다.)


그나저나 다음 만나는 날에는 어찌 약속을 잡아야 하나.

추워지면 미리 나와계시는 게 수월치 않을 텐데. 벌써부터 걱정이다.

ㅋ미리 걱정하고 있는 나도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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