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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태경 Nov 19. 2021

수능 소리만 들어도 울렁거리던 때가 있었는데

수능이라는 단어를 들어도 덤덤하니 어제와 별반 다른 날이 아닌 게 되었다.

두 아이를 수능의 언덕을 넘겨 보낸 지가 여러 해.


선배 때문에 힘든 고등학교를 버텨내야 했던 녀석.

초ㆍ중ㆍ고 그간 쌓아왔던 공든 탑이 몇 개월 만에 무너지는 걸 봐야 하는 부모 마음이야 이루 말할 수 없었지만, 엄연히 삼자 입장. 당사자인 아이는 얼마나 힘들었을지, 뒤돌아 회상하면 참 대견하다.

선생님들이 걱정과 안타까운 맘으로 수도 없이 전화를 하고, 상담을 하면서 어떻게 해서든 다시 기대주로 끌어올리고 싶어 했던 학교 측과 내 맘은 달랐다.

까짓, 대학을 안 가도 상관없다.

잘 이겨내고 단단해져 내 곁에서 웃을 수만 있다면 더 이상 욕심내지 않으리라.

기도만이, 아이에 대한 믿음만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고3이 되면서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다.

놓쳐버린 시간의 공백을 메우기에는 역부족이었고, 수능 날짜는 다가왔다.


수능 며칠 전부터 도시락을 어떻게 싸야 하나? 고기는 소화가 안 될 텐데? 식어도 괜찮으려나? 사과는 색이 변할 텐데?

수능 당일 새벽부터 일어나 고민하던 도시락 숙제를 했다.

늘 해오던 먹거리와 별반 다르지 않은 일임에도, 계란을 말아 넘기는 손이 어찌나 떨리는지. 반찬과 과일을 한 조각씩 담아가며 정성을 들였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어느 한 곳에도 부족함이 없이 넘치게 담았다.


아이를 깨우기 전, 싸놓은 도시락을 식탁에 올려놓고, 편지를 썼다. 전장에 나가는 자식을 향한 부모 맘이 이러하지 않았을까.(과한 비유인가ㅜㅜ) 주저리주저리 써 내려가는데 문득 눈물이 흘렀다.

힘든 시간 잘 이겨내고 수능까지 보러 가는데, 이게 무슨 청승이람.

쓰던 편지를 구겨버리고, 다시 썼다.

잘 놀다 오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편지를 써서 도시락 가방에 넣어줬다.


“이따 저녁에 보자. 나는 영화 보러 갈 거야~ 끝나고 맛난 거 먹으러 가자.”

시험장에 아이를 내려주면서 열린 창문으로 쿨하게 한 마디 던지고, 손을 흔들어 줬다.(영화는 무슨, 종일 가슴이 쪼그라들어서 진통제까지 먹었구먼)


며칠 전 빼빼로데이라고 빼빼로를 내밀며, 하얀 치아를 보이며 씩~ 웃어주던 녀석.

지금은 웃으며 얘기한다.

“별 탈 없었으면 원하는 대학을 갔겠지만, 돈 주고도 못하는 인생 공부를 일찌감치 했으니까 앞으로 잘 될 거야. 엄마도 많이 힘들었을 텐데, 고마워”

그럼 된 거지.


‘딸냄, 힘들 때는 뒤돌아봐. 거기에 늘 내가 있을 거야. 욜라 뽕따이~ 쏴랑한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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