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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태경 Nov 22. 2021

구절초 꽃잎차가 바닥을 보이면

coming soon winter

새로운 악보는 손에 익지 않은 기타 줄 위를 헤맨다.

조율이 필요한 목소리가 어설프게 쇠줄의 울림을 따라간다.

새로움은 늘 낯설다.

헤일 수 없이 많은 가을을 보냈는데도 매번 가을을 보내는 것이 처음인 양 힘들다.

지르지 않아도 되는 노래를 가파르게 부리고 났더니 목이 텁텁해졌다.


 


가을바람… 가을 하늘… 가을 들녘… 가을을 담뿍 담은 마른 구절초 꽃잎에, 김이 나는 따뜻한 물을 부었더니 가을 향기를 진하게 전해준다.


창밖에는 비가 내린다.

가을을 보낼 심산인지 비바람이 차다.

이 비는 몇 잎 남지 않은 구절초 꽃잎을 떨구어 낼 테지.

억새가 하얗게 넘실대는 그 가을 들판에 마음이 가닿아있다.

누구도 내게 가을을 털어 내는 법을 일러준 적이 없다.

괜찮다.

그들도 나와 같을 것임을 알기에 위안이 된다.

매번 서툴다.

필시 가슴이든, 머리든, 어디에든 칩 하나 더 달고 태어나지 않았나 싶다.

풀숲의 일렁임… 나뭇잎에 맺힌 이슬방울에 담긴 아침햇살… 떨어져 길가에 나뒹구는 낙엽…

어느 것 하나 지나쳐지는 법이 없으니, 버거운 감흥에 맘이 따라가기 바쁘다.

차 한 모금에, 내겐 커다란 나무인 아버지를 잃었던 상실의 가을이 되살아 난다.

다시 한 모금 마시니, 무너진 탑 앞에서 망연자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아무것도 하기 싫었던 시간이 스쳐 지나간다.

많은 세월 내 싱그러운 시절과 함께 보내어졌을, 설레고, 행복하고, 슬프고 아팠던 지난 가을.


구절초 차가 바닥을 보인다.

기억도 바닥을 보이면 좀 후련해지려나?


버벅거리는 기타 연습을 내려놓고, 마저 잔을 비우고 수영이나 가야겠다.

실컷 물첨벙을 하고 샤워를 하고 나면 개운 해질 테니까.


그래.

간다면 쿨하게 보내줘야지.

곧, 오실 겨울을 위해 한껏 마음을 부풀려 설렘을 담아야지.

coming soon wi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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