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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태경 Mar 12. 2022

나의 밤은 CG가 되었다

백내장 수술(다초점 렌즈 삽입) 후기

몰랐다.

누군들 알겠는가. 이 나이에 이런 나를 만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캡틴 아메리카의 방패처럼 막강한 정도는 아니었어도, 거친 세상에 대항할 정도의 무기는 내게도  있었다. 삐까뻔쩍은 아니었지만 그나마도 잃고 나니, 듬성듬성 깃털 빠진 몰골이 말이 아니게 되었다.

세상 불쌍하기 짝이 없다.

허나, 쫀심만은 살아 있다.

꽃꽂이 세운 머리, 이빨을 앙다물고 그 어떤 고난에도 굴복하지 않으리라 빳빳한 성질머리 하나로 버티고 있는 털 빠진 늙다리 새(이렇게 치부해버리기에는 억울하지만, 친구 중에 사고 친 자식 때문에 일찌감치 손주를 봤다 하니 싸잡아 할매 대열에 합류했다)가 되었다.


몇 해 전부터 눈이 침침해져 책을 읽거나, 근거리 작업을 하고 나면 한동안 눈의 피로감으로 두통에 시달렸다.

스트레스 때문에 일시적인 현상이려니, 좀 지나면 나아지려니, 마인드 컨트롤하며, 이 또한 다 지나가리라.

'옴 마니 반메 훔~~~'(불교에서 쓰는 진언인데, 지혜와 공덕을 갖추게 되고, 번뇌와 죄악이 소멸된다 하니 ㅎ어디서 들은 건 있어서, 답답할 때 크게 숨을 내쉬며 되뇌는 주문이다. 불자가 아니면서 웃기기는 하다)

그럼에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아서 병원에 갔다.

백내장이란다.

수술이 답이란다. ㅜㅜ 참내 고난의 연속이다. ‘산 넘어 산’이란 말이 딱이다.

잠도 오지 않고, 병원을 찾아 서울로 가자는 딸냄의 성화도 귀찮고, 번거롭다. 예사롭게 하는 흔한 수술이니 예서 하겠다 했지만, 이래도 저래도 심란한 건 매한가지다.


처음 찾아간 동네 병원에서 검사랍시고, 예전 검사방식인지 눈을 사납게 휘저어, 검사 후 통증으로 불안만 증폭시켰다.

그로부터 시작된 폭풍 검색.

단초점 렌즈로 할 것인가, 다초점렌즈로 해야 옳은지. 실시간으로 마음이 흔들리며 검색창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알아낸 정보에도 불구하고, 결론보다는 아는 만큼 혼란만 커졌다.

까짓 모르겠다.

어찌 되었든 지금보다는 낫겠지.

여태껏 살면서 제일 좋은 거, 제일 비싼 거와는 친하지 않게 살아왔는데, 까짓~ 좋은 거로 하자.

매달 쌩돈 나가는 것 같고 아깝기까지 했던 보험 혜택을 볼 때다.

보상심리가 발동하니 결정이 수월해졌다.


그간의 수술(맹장, 무릎, 출산, 디스크)을 통틀어 수술 시간이 제일 짧았다.

수술대에서 모든 준비가 끝나고, 외래 진료 중이던 의사가 홀연히 나타나 ‘자~ 시작하겠습니다’ 20분쯤? 아마도 덜 걸렸을지도 모르겠다.


그 후 내게는 새로운 세상이 펼쳐졌다.

나이 오십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되어 마법의 도시에 입성을 했다. 블링블링 CG 세상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수술 후 처음 어두워진 거리도 나섰을 때의 충격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원래 불빛은 저렇다….내가 알던 불빛들은 꿈속에서 본 것이다….꿈에서 깨어났으니 현실에 적응해야 한다….. 뇌에 주문처럼 최면을 걸어 본다.


인공수정체를 가진 나는 6백만 불의 사나이(1974년 미국 드라마로 스티브가 뚜뚜 뚜두~~ 하면 눈이 잘 보였다).


일단 끝내고 나니 후련하기는 하다.

적응 기간이 1년 정도라는데, 이제 한 달이 되었다.

안경 도수만 바꿔도 적응시간이 필요했었는데, 불편함은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부모님이 주신 몸으로 감사히 살다가, 사고나 지병으로 부득이하게 인공 삽입물로 교체해야 하는 수술은 수술대위에 올라가기 전의 생각이 중요하다.

기대치가 높으면 그만큼 실망도 크다.

‘지금의 내 눈보다야 낫겠지’

분명 수술상담 시 장 ㆍ단점에 관해 설명을 듣고 장점에 따른 결정이었다 해도, 단점 위에 기대치를 두고, 마음속 긍정의 펌프질을 열심히 하는 게 수술 후에 겪을 심리적 불안과 불만에 도움이 된다.


백내장은 수정체의 혼탁 정도 차이에 따라 치료 방법이 달라지기는 하겠지만, 종국에 가서는 인공 수정체 삽입이란다.

바이크도 타야 하고(안경을 썼을 때 헬멧을 쓰고, 벗기에 불편하다), 좋아라 하는 미술관도, 영화관도 가야 하고, 그리고 만드는 수작업도 해야 하니 근거리ㆍ원거리 어느 것도 포기할 수 없었다. 추운 날 안경에 끼던 지긋지긋한 김서림도 잊고 싶다.


단초점은 근거리를 선택하고 안경을 쓰느냐?

원거리를 선택하고 돋보기를 쓰느냐?

다초점렌즈에도 몇 가지 종류가 있긴 하지만, 근거리 ㆍ원거리ㆍ 중거리를 아우르며 블루라이트까지 되는 렌즈도 있다.


유년기부터 안경을 쓰고 살았던 내 입장에서는 백내장을 계기로 안경을 벗고자 다초점렌즈를 선택했다.

아무리 좋은 렌즈라 해도 근접(30센티 안쪽) 섬세한 작업 시에는 돋보기가 필요하단다.

빛 번짐 같은 단점들이 있긴 했지만, 수술 전의 눈도 과히 편하게 눈뜨고 살기에는 부적합했으니, 하나 내주고, 두 개 얻는다 생각하니 맘이 편했다.

‘옴 마니 반메 훔~~~~ 스흡~~~’


어떻게 뭉개져도 선글라스 쓴 얼굴이 낫다. ㅋ절대 벗으면 아니되느니라.

수술 전 안경원에 가서 근사한 선글라스도 샀다.

선글라스를 낀 거울 속의 내 모습은 ㅋ보기만 해도 기분이 째진다.

남들처럼 도수 없이 근사한 까만 안경을 쓰고 싶었더랬는데, 백내장 때문에 얻어걸린 행운이다. 올봄에 바이크 타고 바람 부는 언덕의 카페에서, 멋지게 헬멧을 벗어 핸들에 걸어놓고, 똭~~ 근사하게 선글라스를 꺼내 쓰리라.

나이 들며 거울 속 얼룩얼룩 한 피부를 마스크가 가려주고, 선글라스가 마저 가려줄 테니.

뿜뿜 멋짐은 예약해놨다ㅎ.

가릴수록 미인이잖은가ㅎ. 말이야 말밥이야. 되도 않는 소리를 한다 할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좋은 것만 생각하며, '옴 마니 반메 훔~~' 진언을 읊조리고 나니 한결 맘이 단단해진다.


심봉사 눈을 떴다.

우리 집 전등이 그리 밝은지 몰랐다.

막 글을 깨우친 아이마냥 차창 밖으로 스치며 지나가는 간판을 읽느라 신이 난다.


좋기만 하겠는가.

내 것 아닌 걸 집어넣었으니, 이물감은 당연하고, 뻑뻑하고 불편하니 인공눈물을 달고 사는데, 점차 좋아지겠지. 수술 후 염증이 제일 무섭다 하니 안약과의 전쟁이다. 이 또한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다.


인터넷에 떠도는 백내장에 관련된 댓글들은 참고일 뿐, 본인의 결정이 제일 중요하다.

만에 하나 희박하지만, 잘못된 사례가 될 수도 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운빨에 맡길 수밖에 없다. 누군가 속 시원히 설명해주고, 결정 팁을 주면 좋겠지만, 좋은 기운이 좋은 길로 인도하리라는 믿음. 굳건한 믿음만이, 알 수 없는 내 삶의 어두운 길에 쌍라이트를 비춰줄 것이다.




에효효~~

눈 수술 후 걱정거리를 덜었다 했더니만, 또 손목이 문제다.

치료 한 번 제대로 받지 않으면서 무쇠(ㅋ좀 굵직하기는 하지)처럼 쓰기만 해놓고, 요사이 기타까지 좀 무리하게 쳐서일까?

물리치료라도 받아볼까 해서 갔더니 ‘건초염’이란다.

내시경으로 주사(겁나 아프다. 의사가 잘 참는다고 했지만, 태연한 척을 한 거지, 부들부들 이가 떨렸다)를 맞고, 물리치료를 하고 왔다.


까짓 거 공양미 삼백 석이며, 인당수를 빌리지 않고서 새롭게 눈도 떴는데, ‘건초염’이야 대수겠냐.

뻐걱 뻐걱 건조한 눈에 안약을 넣고, 손목에 저주파 패드(나이 숫자가 느는 만큼, 자가 치료기의 가짓수도 는다ㅜㅜ)를 붙인다.


‘옴 마니 반메 훔~~~~~’

 다 잘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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