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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태경 Mar 23. 2022

애지중지하던 내 새끼들을 버려야만 했던 그날

지금은 내 곁에 없는 녀석들 사진을 보면서 가슴 한쪽이 뜨끔거리며 미안하고 아린 맘을 쓸어내린다.


누구한테도 하지 못하는 상처 받고 응어리진, 두서없이 던지는 말을 들어주던 녀석들.

무안한 사랑에 보답하듯 튼실히 자라주고, 만개한 얼굴로 환하게 웃어주던 녀석들.

내가 숨 쉬고 있는 시간 안에서 늘 교감하며 지친 삶 귀퉁이에서 위로가 되어주던 녀석들.

세상이 날 힘들게 할 때도 곁으로 돌아가 손을 얹으면 ‘괜찮아!’ 맘을 쓰다듬어 보듬어 주던 녀석들.


사다리차에 실려 내려오던 그날.

덜커덕거리는 좁은 사다리차 선반에 어수선하게 실려 내려와 아파트 화단 앞에 널브러져 갈 곳을 잃어버린 녀석들.

나를 따라갈 수 없다는 걸 진즉에 알아차린 것인지(내 눈에는 필시 그리 보였다), 잔뜩 풀이 죽어 축축 늘어져 있다(안다. 미안한 맘에 괜스레 그리 뵈는 것이었다는 것을)

이사 날짜가 잡히고 며칠 전부터 더 신경을 쓰고, 미리 물도 주고, 빠짐없이 매만져 사랑한다… 데려가지 못해서 미안하다…  


이삿짐차에 실리지 못하는 화초를 보며 가져가도 되냐는 물음에, 화초이름과 세심하게 관리요령도 알려주고, 골고루 영양제까지 챙겨주며 잘 키워주십사 당부를 담아 떠나보냈다. 설탕에 개미 모이듯 사람들이 모여들더니 하나라도 더 가져가려고 찜을 해놓고 쉽사리 들고 갈 크기가 아니라 전화로 사람을 불러대고, 삽시간에 난장판이 되었다. 그러는 사이 이삿짐들은 주인이 신경 쓸 새도 없이 차에 실렸다.


횟수로 치면 20년을 넘긴 덩치 큰 녀석들이 100여 개. 크고 작은 것까지 하면 200여 개가 넘는다.



지인의 집에서 분갈이해주며 분가를 시켜 오던지.

병들고, 쥐어뜯기고, 뿌리째 뽑혀 너덜거리며 길가에 버려져 있던 녀석을 입양해와서 갖은 애정과 공을 들였다. 정성을 아는지 튼실해진 푸른 잎으로 보답하는 녀석.

어디서 떨어졌는지 타의에 의한 낙상으로 아파트 화단 목련 가지에 걸쳐져 있던 부러진 행운목 가지. 수경재배로 뿌리를 내리고 영양 듬뿍 포실한 배양토에 다독여 심어, 십 년을 넘게 키웠더니 천장 때문에 본의 아니게 겸손해져 고개를 숙여야 할 정도로 꺽다리가 되었다.

여름밤마다 어둑한 베란다로 나를 이끌던 학재스민 짙은 꽃내음.

만개하면 매력적인 하얀 꽃송이, 흩뿌리는 향기에 입을 맞추게 만드는 어지러울 정도로 아찔한 매력을 가진 오렌지재스민.



구피와 더불어 살던 아이비.

귀염 뽀작한 아보카도 형제들.

이름만 들어도 가보지도 않은 남미를 그리워하게 만드는 자메이카랑 송오브인디아.

내 곁으로 올 때의 사연들도 각양각색, 사연들은 그리운 맘에 누에고치에서 실이 풀리듯 실타래를 감는다.


가끔 들리는 화초 가득한 카페에서 키 크고 훤칠한  행운목 옆(다른이가 앉아 있지 않으면 늘 지정석이다. 내가 도장 똭~ 찍어 놔쓰ㅎ 혼자만의 상상이지만 작은행복이다)에 앉아 있노라면, 호위무사(우 행운목, 좌 자바)를 둔 것처럼 든든하고 좋다.

자리를 일어날 때는 좋아하는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남겨 녀석과 나누고 온다.(당연히, 흙 상태를 봐서 줘도 되는 시기에만 준다. 카페 사장님이 평소 화초에 대한 조언을 내게 구하는지라 그리한다는 걸 주인도 아는 사실)


화초와 교감하는 나를 보는, 관심 없는 사람들이야 ‘뭔? 소리야’ 하겠지만 20년 넘게 더불어 희로애락하며 지내던 녀석들. 사정상 이별을 해야 했지만 이별후 살면서 내내 가슴 아픈 일이 되어 뜬금없이 생각나서 되씹게 되는 아픈 추억이다.


에고~ 내 새끼들

뿔뿔이 흩어져 잘 크면 좋으련만. 아직도 아삼삼 눈에 선한데......

내 맘 같으려나 모르겠다.

내가 잘살아 내면, 어디선가 잘살아주겠지.

고로,

염원한다. 나도, 내 아이들도, 어렵사리 떠나보내야만 했던 녀석들도 모두가 무사 무탈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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