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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태경 Jul 08. 2023

너와 이 여름을

처음 시작은 이랬다.

지인의 시골집에서 가져온 아삭한 상추랑 100세가 되신 할매가 정성껏 다듬어 주셨다는 키 작은 토종부추.

먹다 먹다 남았을 즈음.

마트에서 사 먹던 상추와는 다르게, 약간은 억세고 식감이 살아있어 전을 부쳐먹을까 하다가 물김치를 담아보기로 했다.


예전에는 겨울에 저장용으로 만든 김장김치가 물리게 될 즈음에 푸릇하게 올라오는 열무를 가지고 김치를 만들어 먹었다.

지금이야 한겨울에도 마트에 가면 모든 채소들을 철구분 없이 구할 수 있으니, 먹고 싶으면 아무 때나 담가 먹을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 해도 제철 노지에서 나오는 녀석들과는 다르다.

날이 풀리고 푹해지면서 장에 쏟아져 나오는 채소들로 여러 가지 물김치를 만들어 먹는다.

봄판에 나오는 열무와 얼갈이로 만드는 물김치를 시작으로, 오이를 통으로 십자 칼집을 내어 절였다가 오이김치(단, 고춧가루를 넣지 않는다)처럼 속을 채우고 풀을 쒀 젓갈로 간을 한 국물 자작한  뽀얀 오이물김치, 배추속깡에 무를 나박하게 썰어 사과를 넣어 만드는 나박 물김치.


더위에 입맛은 떨어지는데 끼니를 때워야 하는 날.

얼음 동동 띄운 시원한 물국수가 먹고 싶은 날.

고구마, 떡, 피자나 치킨을 먹다 입가심이 필요할 때.

금상첨화.

단짝친구와도 같은 물김치.

늦은 봄 여러 차례 만들어 먹었던 오이물김치가 물렸는지 한 번 먹을거리가 남았는데도 손이 가질 않는다.

입맛이 지조가 없다.

맛나다~ 짱! 맛나다~

냠냠 쩝쩝 맛있게 먹었는데, 깎아 먹다 남긴 사과처럼, 풋풋했던 사랑이 변하듯, 입맛이 수시로 변한다.

그럼에도 반전인 것은, 한참이 지나고 나면 또 그 맛이 그리워져 장바구니에 재료들을 담아 오겠지.


끊임없이 요리가 재미있고, 신난다.

재료를 보면 요리를 생각하고, 요리를 생각하면 재료가 생각난다.

가슴 한편에 품고 사는 꿈 중 하나가, 자연으로의 낙향이다.

탸샤튜터처럼 정원을 가꾸는 게 우선이지만, 채소들과 과일나무에서 수확한 재료들로 술을 만들고 요리해서, 지인들을 불러 먹자판을 벌이고 싶은 꿈이 있기 때문이다.

배가 불러지면 기타 치며 노래 한 자락 걸치고, 어둠이 짙어지면 밤하늘 별을 올려다보며 별빛에 취하고, 불어오는 바람에 취하며 삶을 녹여내고 싶다.


언제 떠나려나?

떠날 수는 있는 거겠지?


그렇게 내게 온 상추와 부추덕에 만들게 된 상추물김치.

이번에는 냉장고에 묵어있던 재료(야채류를 좋아해서 늘 몇 가지는 있다)들을 사용한 활용본.

이 물김치의 뽀인트는 적은 양을 만들어 홀랑홀랑 먹어 버리는 것이다.

익혀 먹어야 맛이 난다. 많이 만들어서 오래 먹다 보면 김장의 감칠맛 나는 묵은지와는 달리 급격히 맛이 떨어진다.

자주 담으려면 귀찮을 수도 있는데, 시도 때도 없이 그리워지니 다시 담게 된다.

욘석은 야채만 씻으면 끝.(좀 과장이다 싶다. 뻥쟁이ㅎ)

그만큼 쉽다.


처음 시작은 상추였지만 이번엔 샐러드로 먹던 로메인 2 포기. 씻으면서 먹기 좋은 크기로 우둑우둑 손으로 자른다.

오이도 운동 갔다 와서 아작아작 씹어먹고 남은 2개. 여러 번의 경험치로, 껍질을 벗기고 반을 갈라 씨 부분을 제거하고 소금에 절이지 않은 게, 쉽게 무르지 않고 다 먹을 때까지 식감이 좋았다.

장떡을 해 먹고 남은 부추 한 줌.

감사하게도 일전에 쓰고 남은 홍고추가 무르지 않고 남아 있었다.

적은 양이 나올 거 같아 아쉽지만 일단, 있는 재료만큼만 담는다.


모든 김치류에는 찹쌀풀을 쑤어 양념을 만들지만, 상추물김치를 처음 시작한 그날은 아침부터 후덥지근했다.

풀을 쑤려면 불을 써야 하니 꾀가 났다.

냉장고 속 찬밥을 갈아 넣었더니 곱게 갈리지 않아 입에 걸리는 밥풀들이, 이 물김치의 장점이 되어 버렸다.

냉장고 안에서 오래되어 푸석거리고 쪼글거리는 사과 한 개.(반 개만 써도 되겠다 싶지만, 남기면 워따 쓸껴. 그냥 먹기에는 맛이 읍따. 껍질에 영양소가 많아도 먹어보니 매끈한 국물이 좋아 껍질을 벗겨 사용한다)

매운 걸 좋아해 청양고추가 떨어지지 않는다. 욘석이야 개인취향이니 안 넣어도 그만이지만, 뽀얀 물김치라 칼칼한 고추가 들어가 주면 좋다.

생강 한 조각과 함께 몽땅 갈갈갈~ 믹서리로 갈아준다.

맑은 국물을 원하면 채에 걸러 주면 되지만, 여러 번 해 먹어 보니 걸쭉한 것이 좋아 거르지 않고 그대로 쓴다.

여기에 갈아 놓았던 마늘과 젓갈과 MSG(욘석을 빼고도 만들어 봤는데ㅎㅎ 맛있는 게 중하다. 뺄 수가 없다), 직접 만들어 쓰는 매실청을 넣어도 봤는데 매실향이 여기에는 맞지 않아 사용하지 않는다.

익으면 어느 정도 국물이 생긴다는 것을 감안해서 물은 취향껏 추가해서, 간(젓갈과 소금)을 한다.


씻어 놓았던 재료를 섞어 담아, 홍고추는 씨를 빼서 잘라 올려주고, 갈아 놓은 국물을 부어준다.(이때 굳이 간을 맞추지 않아도 된다. 채소를 절이지 않았기에 익는 과정에서 슴슴해지며 간이 옅어지기 때문이다)

몇 시간 뒤 살살 얼러가며(채소류들은 어르며 만져줘야 한다. 막다루면 성을 내며 풋내를 풍기고, 으스러지며 자멸해 버리기 때문이다) 살포시 뒤집어 준다. 이때 간을 봐서 짜면 물 추가, 싱거우면 소금이나 젓갈을 추가하면 된다.


만들다 보면 실력이 늘게 되는 게 요리고, 미각도 섬세해지고, 자신만의 노하우도 생기고, 만족도가 높아진다.

이도 저도 귀찮으면 사 먹으면 되겠지만, 요즘엔 취미부자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취미활동에 열정인 시대이다.

그림이나 음악만이 예술이겠는가.

요리는 오감을 만족시키는 예술적 취미로 손색이 없을 것이다.


요즘 같은 날씨에는 만들어 하루를 재우고 나면, 재료들이 누르스름해지며 익는다.

이육사의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만이 근사하겠는가.

물김치 익어가는 새콤 상큼한 냄새.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침샘을 자극시키니 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저절로 숟가락을 들게 만든다.(이육사 선생님의 전설적인 시에 비길바는 아니지만, 자뻑푼수짓을~ 밑줄 친 부분은 도용한 부분입니다ㅎ 죄송합니다)

익으면 자작하게 물도 생기고 김치통으로 옮겨 담아 냉장고로 고고씽~~~


다음에는 미나리도 넣어봐야겠다.

미나리향이 섞이면 어떨지 궁금해졌다.(그렇다고 당장 사러 나가기에는 상당히 귀찮으니까 이번엔 패스)




매번 냉장고 문을 열면 투명한 용기에 담긴 상추물김치.

‘날 먹어줘~~~’

그 맛을 아는데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수가 없다.


메밀면을 탱탱하게 삶아, 상추물김치를 국물과 함께 담아 새콤함을 향상 시켜주는 식초를 추가해 얼음 동동 띄워, 감동란(단백질보충용으로 떨어지지 않게 만들어 놓음)과 겨자를 올려 통깨 팍팍~ 뿌려 일용할 양식을 풍성하게 한 그릇 담는다.


옆구리살이 조금 넉넉해지기는 하겠지만, 행복하면 그만이지.

노릇하게 익은 로메인(상추)의 식감은 맛보지 않으면 설명이 되지 않는다.


로메인위에, 계란위에, 메일면위에 오이를 찹찹이 올려 국물에 푹~ 정궈 입이 터지게 한 입 쩍~ 다 씹어 넘기기도 전에 새콤한 겨자맛의 깔끔하고 깔쭉한 국물을  한 수저, 두 수저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가 없다.

나의 여름을 몽땅 너에게 허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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