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 => 싹
언제부터였는지 모를 싹 틔우기.
왜 이렇게 싹 틔우기에 연연을 할까?
거슬러 올라가 근원을 찾아보면 이걸 갖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내겐 식물을 키워내기에 최적화된 DNA(태어나면서 식물집사인 엄마를 숨 쉬는 것처럼 보고 자랐음)를 장착하고 있다.
어릴 때부터 식집사(요즘 생겨난 단어이지만) 옆에서 보조 식집사를 하고, 어른이 돼서는 메인 식집사로 짬밥이 쌓였으니, 면허(면허 없이 시술하는 부류들이 젤 무서운디ㅎ)는 없어도 반식물치료사는 되지 않을까.
이를 통해 영리를 추구하지 않으니 잡혀가지는 않겠지.^^
와자작~ 베어 물은 사과에 박혀있는 까만 씨.
말캉하고 미끄덩한 과육에 싸여 있는 감씨.
딸기의 붉은 표면에 박혀있는 여드름같이 생긴 씨.
늙었다는 표현에 서글퍼하지 않을까 싶은 노란 호박 안에 수두룩한 노리끼리한 씨. 손질이 수고스럽지만 호박씨는 맛있다.
연둣빛 과육에 숨어 있는 커다란 눈깔사탕같이 생겨, 안에 엄지공주라도 있을까 싶은, 과하게 튼실하고 토실한 아보카도 씨.
빨간 고추장에 푹~찍어 한 입 베어 물고 남은 몸통을 툭툭 치기만 해도, 우수수 떨어지는 납작한 고추씨들.
살면서 수많은 씨를 접하게 된다.
다만, 관심이 덜하기 때문에 인지하지 못하고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다.
반대로 내겐 그것들이 잘 보인다.
궁금 심심풀이로 싹틔우기를 했던 것이 시작이었다.
경험해보지 않으면 상상할 수 없는 행복이다.
흙을 뚫고 씩씩하게 고개를 밀고 올라오는, 여리고 작은 새싹이 내겐 치유의 기쁨이 된다.
삶은 뜻대로 되는 법이 없다.
타인이 내 맘 같지는 않다.
나도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
자존감이 땅에 떨어지고, 상처로 너덜거리는 맘이 추슬러지지 않을 때, 거친 파도를 만나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때
싹틔우기는 좋은 치료 방법이다.
시작하는 첫날부터 온통 신경세포가 그쪽으로 향한다.
하루가 지나 변동이 있을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눈뜨자마자 분무기를 들고, 잘 자라줄 거지?
협박 같은 암시를 하며 기다리고 있음을…
설레는 날들의 연속.
씨앗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일주일 전후로 흙이 숨을 쉬려고 하는 것처럼 숨구멍이 생기며 흙표면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하고 푸른빛이 보인다.
그때부터는 일사천리 하루가 다르게 쑥쑥 쑥~~
통장에 돈이 쌓이면 이렇게 기쁠까?
얼마 전, 파프리카와 피망을 손질하며 도마에서 밀려나는 씨들을 그냥 버리기 아쉬워 화분에 뿌리듯 심어놓고, 까만 비닐봉지를 씌워 아침저녁 시간 날 때마다 분무를 해줬더니, 여름이라 그런가?
일주일도 되질 않았는데 싹이 어마무시하게~ 저런 화분이 두 개다.
몇 개만이라도 싹을 틔워주면 좋겠다 싶었는데.
이를 어쩐다.
농사지을 땅이라도 사야 할 판이다.
잘했어!!!
참~ 잘했어~
내게 하는 말인지, 새싹에게 하는 말인지……
쓰담 쓰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