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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태경 Aug 04. 2023

떨어지는 자존감을 끌어~ 올려~~

새벽에 눈을 떠서 젤 먼저 화장실을 간다.

현관옆에 서 있는 전신거울에 가오나시(<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오는 얼굴 없는 녀석으로 미끄러지듯 움직인다)가 보인다.

두루뭉술한 몸통도 비슷하긴 하네.

걷는 건지 질질 끌고 가는 건지, 느리고 무거운 걸음이다.

요사이 아침마다 손발이 붓는다.

어젯밤에, 흘러내린 땀방울이 눈꺼풀에서 매당구를 탈 정도로 흠뻑쑈를 하며 만보를 넘게 걸었는데도, 붓는 건 마찬가지다.

걷기를 좋아하는데도 불구하고 요즘에는, 해가 뜨기 전 새벽이나 늦은 저녁이 아니면 걸을 수가 없다.

눈뜨기도 힘들 정도로 작렬하는 태양, 지글거리는 지열, 고온으로 잔뜩 성이 난 공기로 숨이 콱콱~ 막히니 강심장이라도 무리가 갈 수밖에 없다.

그늘에 잠시 쉴라치면, 어디에 있는지 뵈지도 않는 매미의 울음소리는 주파수를 최대치로 틀어놓은 듯 신경을 자극한다.

여름 한낮에 걷는다는 것은 인체의 한계를 실험하게 하고, 득도에 이르게 하는 수행의 길이 된다.


띤띤한 손가락을 쥐었다 폈다, 오늘도 심상치가 않다.

소변이라도 보면 좀 나아질까 싶어 눈뜨자마자 아랫배를 쓸어내린다. 만져지는 똥배는 우짤끼고ㅜㅜ

시원하게 수분이라도 배출하고 나면 손가락 펴기가 좀 수월해질 텐데.

장마철에 물먹는 하마도 아니고 물기를 만땅 머금은 스펀지가 된 기분이다.


화장실 옆에 있는 방문 사이로 체중계가 보인다.

빼지는 못하더라도 더 이상 찌지는 말자는 게 신조다.

체중계의 숫자를 보면 경각심이 들어 조심하지 않을까 하는 구매초기의 맘과는 달리, 청소할 때마다 걸리적거리는 사물로 전락해서 당근에 내놓기 일보 직전이다.


문득, 궁금했다.

소변을 보기 전과 후의 차이를… 궁금하면 해결해야지.

조금이라도 가벼워지고 싶은 맘에 잠옷을 훌러덩 벗었다.

00.00

불 켜지 않은 방 구석에서도 선명하게 빛나는 4개의 숫자.

소수점이 뭔지 그냥 절사 해서 반올림해 버리지.(아닌가. 누군가는 미묘한 소수점 아래 숫자에 희비쌍곡선을 그리려나).

체중계에서 내려와 CCTV가 있는 것도 아닌데, 후다닥~ 화장실로 뛰어 들어간다.

원하는 만큼의 배출은 아니었어도 나름 시원하다.

변기의 물 내림 버튼을 누르니 시원하게 물이 내려간다.

소변을 저렇게 시원하게 볼 수 있으면 월매나 좋을까. 순식간에 2kg은 빠질 텐데 말이다.


두 자리 소수점까지 계산하고 보니 소변의 무게는 0.5kg.

고작 그 변화로 소변보기 전과 후 한 자리 숫자가 변했다.

무거운 맘으로 체중계에서 내려와 옷을 입으며, 걸리적거리는 엉켜진 긴 머리카락을 쓸어 넘긴다.

stop.

머리카락을 밀면 얼마나 차이가 날까?

널찍한 등판을 다 가릴정도의 길이니, 꽤나 무게가 나갈 것이다.

내게는 죽는 날까지 긴 백발을 휘날리며 오토바이를 타고자 하는 간절한 소망이 있다.

몇 해 전에 감행한 히피펌을 언제까지 고수할지는 모르겠으나 긴 머리 히피펌이 기분전환이 되었으니, 싹둑~ 잘라 버리는 것은 쉽지가 않을 것이다.

것도 모르지.

숏컷을 하고 싶어 안달이 날지도.


나이가 들수록 코밑에 반갑지 않은 게 걸리적거리고(어릴 적엔 아줌마나 할머니들의 코밑에 나 있는 거뭇거뭇한 털이 징그럽다고 생각했다. 된장 할~ 이제 그게 내 모습이 되었다) 에스트로겐(여성호르몬)이 급격히 줄고 있음을 실감한다.

얼굴빛도 예전 같지 않아 BB크림이라도 발라야 그나마 봐줄 만하고, 목소리도 변한 것 같고, 말씨도 곱질 못하다.

거기에 부스스하게 붓기까지 하니, 외모가 가관이다.

아~ 서글프다.

멋있게 나이 들고자 하는 바람은 하루 열두 번 흔들리고, 자괴감에 빠져드니, 다짐했던 바른생활?을 할 수가 없다.


꾸르륵~

아침이라도 걸러 한 끼 줄여보자는 맘이 무색하게 뱃속에 있는 거지가 신호를 보낸다.

배고픔을 이길 수가 없다.

의지박약인 것도 있겠지만, 먹고 싶어서 먹기보다는 어지러워서 먹는다.

’ 너도 나이 먹어봐라.‘

하시는 어른들 말씀은 나의 현실이 되었다.


속수무책으로 변해가는 이 몸을 우찌 해야 할지. 무기력함이 뒤를 따른다.

자존감이 나락으로 떨어진다.

나이가 들었으니~ 라며 순순히 받아들이기에는 아직은 쫀심이 허락해주질 않으니 방도를 모색해야 한다.


나이가 먹을수록 취미를 늘려야 한다는 말에 공감을 하는 바이다.

잡생각들이 나를 잠식시키기 전에 동아줄처럼 정신줄을 잡아주는 역할을 해준다.

딱, 금전적인 것만 여유롭다면 더할 나위 없을

‘취미부자’

지역문화센터가 있으니 저렴하게 배울 수 있는 방도는 있으나 그걸로는 해결되지 않는 것들이 있으니, 레슨비가 솔찬하다.

한량이 되고 싶다.^^


혼자 노래 부르며 간단하게 기타를 칠 수 있게 되면서, 새로이 눈 떠 재미를 붙인 베이스기타.

퉁퉁 부은 손가락을 열심히 움직여 두두 둥~~~

굵직한 베이스 음을 튕긴다.


무게가 부담스러위 산 어쿠스틱 베이스 기타


요즘 맹렬히 연습 중인

이은하의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

https://youtu.be/VSQpAogu5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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