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이 되어가는 밤.
딸아이에게 톡이 왔다.
요즘 일 때문에 주중에는 창원 출장 중인 녀석.
졸업과 동시에 취직이 되면서 집을 나갔고,
얼굴 보기 힘들어졌다.
이삿짐차를 불러 한 트럭 싸 보냈으니,
부모자식으로 한 집에서 사는 일은 끝이다.
때가 되면 자식은 독립을 해야 한다는 나의 지론과,
아이들의 독립성향이 맞아떨어져
분리작업은 무리 없이 수월하게 이루어졌다.
큰아이인 아들은 일찌감치 대학 재학 중에 분가를 했고,
딸은 졸업과 동시에 취업이 되면서
이때다 싶게 살림을 분리시켰다.
서로에게는 장단점이 뒤섞인, 각자의 삶이 시작된 것이다.
같이 살 때는
부모의 경제적, 물리적, 관계의 힘아래
표면적으로는 착하게 살던 아이들이,
몸집이 커지고 사고의 깊이가 깊어지면서
충돌이 잦아지고, 반항의 불꽃이 번져간다.
일명, 똑 소리 나고 자립심 강한 아이들이 더 그런 듯하다.
지지고 볶고, 마음 상하는 일이 다반사다.
“자식이기는 부모 없다”했으니,
이렇게 사는 방식이 나쁘지 않다고 여긴다.
물론 같은 지역에 살고 있으니
남들이 보기엔 우스울 수 있지만,
나름대로는 현명한 일이라 생각한다.
자주는 못 봐도
무언의 지지와,
서로에게 일이 생기면 총알같이 달려올 거라는
든든한 믿음이 깔려 있기에
연락이 뜸해도 외롭지는 않다.
태양을 품은 젊은 녀석들보다는,
지는 석양을 등에 짊어진 내가 더 외롭겠지만.
비 오는 주말,
외지에 나갔다가 아주 근사한 마당이 보이는 카페에서
드립커피를 마셨다.
잠시나마, 달콤한 꿈을 꾸게 해주는 공간이었다.
예전엔 카페인에 무적이라 믿고
시간 가리지 않고 커피를 마셨다.
요즘은
오후 늦게 커피 한 잔만 마셔도
통 잠을 잘 수가 없다.
그래서 어지간하면
오후에는 카페인을 제한하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제는 탐나는 원두를 두고 마시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이 들면서 숙면의 중요함을 절실히 느낀다.
그래서 얼마 전부터는
나를 위한 수면 루틴을 만들어가고 있다.
하루 종일 돌아다녔으니 피곤함에 힘입어
일찍 자려 누웠다… 는 나의 욕심.
아니나 다를까,
낮에 마신 ‘악마의 차’ 한 잔이
잠자리 회방을 논다.
온몸을 뒤척이다가
결국 잠들기를 포기하고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그러다 딸아이에게 톡이 온 것이다.
‘엄마랑 어릴 때 새벽에 편의점 놀러가거나
보문산 놀러가거나 했던 것도 생각나구
가끔 엄마가 서울 떡집에서 떡 사다주던 것도 생각난당.’
더 이상 누워 있기를 포기하고
일어나 방에 불을 켠다.
억지로 누워 있는다고
잠이 올 것 같지도 않고,
까짓, 오늘 잠은 포기다.
그러고는 딸아이와 잠시 톡을 주고받는다.
출장에, 자격증 시험 준비에 바쁘다며
시험 끝나고 보잔다.
언제 이렇게 컸지.
정상의 자리에서 무너져 내려
가혹한 삶의 열병을 견뎌야 했던 시절.
다사다난했던 고난의 무게를 짊어지고
억지로 어른이 되어버린 그 아이가,
지금은 누구보다 환하게 웃는다.
엄마에게 세상 살가운 친구가 되어주고,
묵묵히, 열심히 살아간다.
잠 못 드는 시간.
말없이 손을 모아
간절히 기도드린다.
두려움 앞에 무릎 꿇게 하지 마시고,
세상 제일 환한 얼굴로 웃을 수 있게 하시고,
원하고 뜻하는 바, 노력한 만큼 결실 맺게 하소서.
창밖으로, 동이 터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