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 필름 같은 시간 속, 국민학교 6학년 교실.
(지금은 초등학교라 부르지만)
뻣뻣한 팔다리,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간 까무잡잡한 여학생이 동급생들 앞에서 노래를 한다.
"이 몸이 새라면~ 날아 가리~..."
금세라도 겨드랑이에서 날개가 돋아나 날아갈 것처럼, 세상 진지하다.
귀밑머리엔 땀이 송글송글 맺혀 있다.
지나고 생각하니, 그 나이또래 아이가 부르기엔 참 심오한 노래다.
그렇게 나는 어릴 적부터 하늘을 자유롭게 나는 새들을 동경했다.
전력으로 자전거를 타거나 , 옥상이나 뒷동산에 올라서
"이 몸이 새라면~"을 흥얼거리며 바람을 느꼈다.
다음 생에는 꼭 새로 태어나리라 소원하기도 했다.
성장기를 지나며 하늘을 나는 파일럿을 꿈 뀠다.
90년대 초반까지 공군사관학교는 여생도를 받지 않았고, 비행학교에 간다는 건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한동안은 무선조종 비행기를 날리며 아쉬움을 달랬지만,
간접적인 체험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극심한 고소공포증이 있다.
비행기만 타도 심장이 터질 것 같고, 활주로에 착륙할 때까지 불안에 떤다.
그 시절, 상황이 허락되었더라도, 나는 끝내 극복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소심한 위안을 핑계 삼아, 파일럿의 꿈은 가슴 깊이 잠가두었다.
지금도 새가 좋다.
깃털이 숨 쉬듯 날렵하고 우아한 날갯짓으로 하늘을 자유롭게 활공하는 모습은, 언제 봐도 눈부시고 근사하다.
그중에서도 단연코, 나는 독수리를 좋아한다.
독수리의 눈매, 잘생긴 얼굴? 그 압도적인 생김새.
하늘을 가르는 그 날개는 아주 정교하면서도 우아함과 위엄을 함께 지녔다.
예전에 내가 그렸던 독수리 그림이다.
나이를 먹어 희끗희끗하게 흰머리가 눈에 거슬리는 지금도
하늘, 바람, 새가 여전히 좋다.
길을 걷다 우연히 주워 든 깃털.
어딘가 새의 날개에 붙어 바람을 가르며 하늘을 날았을 깃털들.
오늘따라 유난히 여러 개가 눈에 들어왔다.
누군가 보기엔 별난 습관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길을 걷다 '깃털'을 줍는다.
보이는 대로 줍고, 살균제로 소독하고, 물에 씻어낸 후, 솜털까지 살려가며 말리고 빗어준다.
지금은 그냥 좋아서 모은다.
언젠가 좋아하는 드림캐쳐를 만들 수도 있고, 다른 작업에 쓰일지도 모르지.
행운처럼 내게 온 깃털들.
그걸 손질하며 몽글몽글 콧노래를 흥얼거리다 보면,
잠시나마 어린 시절의 그 소녀가 된다.
"이 몸이 새라면~~~~"
중년이 된 소녀는 꿈을 꾼다.
어떤 꿈일까...
좋아하는 이루마의 <river flows in you>
https://youtu.be/7maJOI3QMu0?si=EHxuQk_3N7IWqjl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