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t Baker <I Fall in Love Too Easily>
오, 근사한 녀석을 만났다.
늘 곁에 두고 싶다.
며칠째 손과 어깨의 통증으로 병원과 한의원을 전전하며 지쳐 있었다.
수술은 피하고 싶었지만, 매일 꽂히는 침에 마음까지 우울해져갔다.
참는 데는 자신 있었지만, 고통은 날마다 나를 파고들었다.
딱, 오늘 날씨처럼.
흐리고 무거웠다.
'이번에도 효과 없으면 수술하자'
결심 반, 체념 반으로 찾아간 한의원.
그런데 첫 회 치료부터 반응이 왔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의 내 마음은 극과 극.
몸도 마음도 이렇게 가벼울 수가 없다.
아, 이 기분.
사탕 하나에 기분이 확 풀리는 아이처럼,
나이도 잊고 마음은 마냥 들떠 있다.
(혹시 병원 정보가 필요한 분이 계시면 알려 드릴께요. 좋은 건 나누고 싶은 오지라퍼니까요ㅎㅎ)
치료를 마치고 인근 맛집에서 밥을 먹고,
늘 그렇듯 ‘찻집 찾기 루틴’이 시작된다.
처음 가보는 동네라면, 시간이 허락할 때는 꼭 카페를 찾아간다. 실패할 때도 있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비 오는 창가에 앉아, 근사한 커피를 만났다.
이름도 멋지다. 엘 엔칸토 게이샤.
핸드드립. 고가 원두.
일반커피와 가격차이가 좀 있었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
첫 입.
첫 키스처럼 달콤하다.
게슴치레 풀리는 동공, 눈이 절로 감긴다.
두 입, 세 입...
점점 줄어드는 커피가 아쉽기만 하다.
헤어지고 싶지 않은 연인을 보내는 기분이랄까.
찻잔은 마치 말하듯 도도하게 빛난다.
“내가 말이야, 이런 커피를 담는다고.”
빈 잔을 들고 찻잔에 코를 박는다.
잔에 남은 향까지 가슴에 꾹꾹 담아가리라.
오늘의 운세는 굳이 보지 않아도 된다.
무조건 ‘왔따!’다.
며칠간 병원 다니며 애달팠던 마음에
제대로 된 보상을 받은 날.
돌아가는 길.
커피 좋아하는 친구 생각이 난다.
테이크아웃해서 전해줘야지.
좋아라 할 그 얼굴이 떠오르니, 벌써부터 행복해진다.
오늘,
행복은 내 어깨 위에 조용히 내려앉았다.
비오는 날이면,
좋아하는 쳇 베이커의 <I Fall in Love Too Easily>를 듣는다.
트럼펫처럼 외롭고, 그의 목소리처럼 조용히 울리는 사랑.
비 오는 날, 마음이 말없이 젖을 때 어울리는 곡.
사랑에 쉽게 빠지는 사람의 고백이 이렇게 아프도록 아름다울 수 있을까.
https://youtu.be/3zrSoHgAAWo?si=11ZuhGRZi5IiavF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