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동안 내리 비가 퍼부을 때가 오히려 낫겠다 싶다.
이글이글을 넘어 지글지글,
콘크리트 보도블록이 불가마처럼 뜨겁다.
그나마 다행인 건, 현대문명의 신적 존재, 에어컨.
(숨이 깔딱 넘어갈 듯하다가도 에어컨 앞에만 서면 빨딱 살아나니, 과한 표현이 아닐지도.)
어릴 적엔 대나무 돗자리에 누워 선풍기 바람 쐬는 게 최고의 호사였는데,
지금은 그 시절이 마냥 그립기만 하다.
요즘 나는 치료에 매진 중이다.
낫고 나면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예약을 거르지 않고 한의원을 찾는다.
치료를 마친 후엔 작은 자유 시간이 생긴다.
오늘은 또 어딜 가볼까?
전날 밤 병원 근처 지도를 들여다보며 위안을 삼는다.
오늘은 원장님이 추천해 주신 카페에 들렀다.
에스프레소를 베이스로, 다양한 메뉴를 접할 수 있는 곳.
콘파냐, 쇼콜라 같은 익숙한 메뉴는 물론이고,
싱글샷에 코코넛 베이스를 더한 코코,
그리고 피에노, 오네로소, 스트라파짜토 같은 낯설고 매혹적인 이름들이 눈길을 끈다.
언제나처럼 애정하는 콘파냐 한 잔.
짧고도 진한 그 맛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한 장면을 떠오르게 한다.
클라크 게이블이 비비안의 허리를 휘감아
영혼까지 빨아들일 듯한 키스를 나누던 순간.
그르치~ 키스는 박력이야. 콩닥콩닥~ 웰케 설레누~
짧지만 강렬한 여운의 커피.
이어 마신 코코는,
코코넛 향 때문인지 베트남 커피를 떠올리게 하는 간결한 맛.
맘 같아선 이것저것 다 마셔보고 싶지만, 위장이 허락하는 건 두 잔까지.
게다가... 아쉽게도 홀린 듯 마셔버려 커피사진도 없다.
저마다의 기억을 담은 입술의 흔적만이 남은 빈 잔.
낯선 커피의 맛은 종종 익숙한 추억을 깨운다.
여행지에서 만났던 많은 커피들.
나에겐 음식보다 커피가 여행의 여운을 깊게 남긴다.
오늘 찾은 이 카페는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 일본의 한 에스프레소 바를 떠올리게 했다.
좋아하는 커피를 사이에 두고 나눈 수다.
친절한 주인장, 예쁜 직원, 혼카 중인 단골손님.
어쩌다 대화가 흘러 여행 이야기로 번지고,
희미해져 가던 여행의 기억이 다시 선명해진다.
세상엔 나와 같은 코드를 가진 사람들이 분명 있다.
그들과 나누는 짧은 담소는, 그야말로 비타민.
잠깐이었지만, 그 대화는 내게 행복 수혈이 되었다.
덥고, 치료에 지쳐 기운 빠진 하루.
도침의 위압감에 발걸음이 무거웠지만,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만난 커피와 따뜻한 분위기.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괜찮은 하루였다.
아싸브리~
까짓, 아픔이 대수더냐!
(물론, 아플 땐 진짜 아프다. 이래서 내가 멍충이다.)
지도에 저장 스티커 추가 완료.
거기에 행복 스티커도 똭!
나른해지는 오후 거피 한 잔과 함께 들으면
ㅋ더 나른해 질 수 있는 곡이다.
뭐 어때, 에어컨 아래라면...
Melody Gardot <Worrisome Heart>
https://youtu.be/SZq0u447vP8?si=q4CqHXGx7quw0Ne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