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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火), 나를 태우는 감정

by 최태경

올여름 들어 가장 높은 불쾌지수.

무엇 때문이든,

내 탓이든,

타인의 불찰이든,

화는 한번 일기 시작하면 산불처럼 걷잡을 수 없다.

한자도 불 火 자를 쓰지 않나.


(火): 몹시 못마땅하거나 언짢아서 나는 성.


날도 더운데,

마음속 불씨까지 주체할 수 없을 만큼 활활 타오른다.

오늘은 그런 날인가 보다.


사소한 일들로 시작해,

부딪히는 사람들도 하나같이 날 선 칼처럼 느껴진다.

어느 쪽에서 불씨가 시작됐는지 따져보기 전에,

그 상황을 받아들이는 내 모습조차 마음에 들지 않는다.


참는다고 능사가 아닐 때도 있다.

그렇다고 억울함과 불합리함에 휘둘려 마음까지 헤집히는 건 더 견디기 힘들다.


나이가 들수록,

더 신중하고

더 성숙한 어른이 되고 싶었다.

옳고 그름 앞에서 조금은 근사한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오늘 나는 그 다짐과는 조금 멀어진 것 같아 스스로에게 실망스럽다.


집으로 들어가 봤자, 혼자 속만 끓을 게 뻔하다.

책 한 권 들고 근처 카페로 왔다.


달큰한 수박주스로 마음의 불씨를 식혀본다.


일기처럼 글을 쓴다.

오늘을 되돌아보고, 이해하고, 반성하고, 그래도 잘 견뎠다고 스스로를 다독인다.


우리는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죽고 사는 순간들 곁을 수도 없이 스쳐 지나간다는데,

그렇게 생각하니,

오늘의 화가 조금은 하찮게 느껴진다.


내 탓이다.

하지만 모든 걸 내 탓으로만 돌리는 건 좋은 방법이 아니다.

자학은 마음속에 돌덩이처럼 쌓여

어느 순간 깊고 어두운 수렁으로 나를 끌고 간다.


그러니,

그만하면 잘한 거다.

나머지도 잘 참았다.


음악이,

활자들이,

그리고 시원한 수박주스 한 잔이

나를 제자리로 되돌려 놓는다.


오늘, 나는 조금 더 성숙한 어른이 된 걸까?




ADOY <Wonder>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사운드 위로
바람처럼 가볍고 투명한 감성이 흐른다.
덥고 무거운 마음을 잠시 잊게 해주는,
수박주스 같은 위로가 되는 음악이다.


https://youtu.be/bmb78ax4Il4?si=kLkVQYkbyn9Ukid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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