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고, 비우고, 일어서기
가위에 눌렸다.(읽던 책 속 문장)
책을 밀쳐놓는 순간, 차가운 얼음에 닿은 듯 머릿속이 ‘꽁’ 하고 멈췄다.
언제부터였을까. 자다가 가위에 눌리기 시작한 것은.
휘저어보는 팔다리는 묶인 듯 움직이지 않고, 몸은 한없이 땅속으로 꺼져든다.
꿈인 줄 알면서도 깨어나지 못한다.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 간신히 눈을 떠도, 며칠 동안 악몽의 잔상이 따라붙곤 했다.
그 시절, 잠드는 시간이 두려웠다.
뭐가 그렇게 나를 옥죄었을까.
여린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 애썼던 탓일까.
모든 걸 아닌 척, 괜찮은 척 숨기려 했던 건 아닐까.
때로는 전생의 죄까지 끌어다 붙이며 비관에 빠지기도 했다.
나는 신이 아니다.
훌륭한 구원자도, 누군가를 바꿀 수 있는 능력자도 아니다.
그저 애써 붙들었던 마음이, 사실은 오만이었음을 이제야 안다.
노력한다고 해서 바뀌지 않는 것들이 있다는 걸, 폭풍 같은 시간을 지나며 알게 되었다.
내 삶에서 내려놓아야 할 사람들을 떠나보내고 난 후, 가위도 사라졌다.
사람이 죽으라는 법은 없었다.
두 아이를 잘 키워 독립시킨 지금, 혼자 남아 맞이한 세상은 오히려 고요하다.
외로움조차 사치로 느껴진다.
숨 쉴 수 있는 지금이, 내가 얼마나 열망하던 시간이었던가.
오늘, 책을 읽다 ‘가위’라는 단어를 만났지만, 그것은 과거 속 그림자일 뿐이다.
과거조차도 마음먹기에 따라 다시 쓸 수 있다는 말을 이제는 믿는다.
카페 한구석에 앉아 책장을 넘기며 생각한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
그 옛날의 나도, 지금의 나도 같은 사람.
다만 버리고, 비우고, 일어서며 성장한 내가 남아 있을 뿐이다.
오늘 저녁은 야채 듬뿍 넣은 도토리 전을 부쳐, 넷플릭스를 봐야지.
소소하지만 가장 확실한 행복을 만끽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