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설레는 기다림

시작하지 않으면 결과도 없다.

by 최태경

애플망고
이름만 들어도 향긋하고 달콤한 맛이 스며든다.
기억 속 맛이 침샘을 깨운다.

책 크기만 하다.

딸아이가 선물 받은 애플망고.
예전 같았으면 “크니까 먹을 것도 많겠다” 싶었을 테지만,
이제는 그 속에 커다란 것을 숨기고 있다는 걸 안다.
그래도 선물이라 그런지 제법 크다.

노랗다.
샛노랗다.
망고 속살이 노란색의 정수를 보여준다.

껍질과 씨 부분까지 갈비 뜯듯 싹싹 발라 먹고 남은 커다란 씨.
이보다 큰 씨앗을 본 적이 없다.
작두콩이 크긴 해도 이만 못하니, 씨앗계의 왕이라 해도 되겠다.
(물론 내가 모르는 녀석이 있을 수도 있지만.)

이 녀석, 내 레이더에 딱 꽂혔다.
작업 개시.

질긴 씨껍질을 칼과 이로 공략해 발라내니,
제법 튼실한 속살이 드러난다.
‘씨 발라’라는 말, 언제 들어도 욕처럼 들려 웃음이 난다.
익히면 망고향이 날까 잠시 고민했지만, 호기심을 누르고 씨앗에 붙은 얇은 껍질을 제거했다.
키친타월로 아기 싸개처럼 감싸고,
물 담긴 접시에 눕혔다.
이 방법이 맞을지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많은 씨앗을 틔워본 경험상 이 방법이면 충분하리라.


책상 한켠, 눈길이 닿는 자리에 두고 지켜볼 것이다.
“어여, 어여, 잠에서 깨어나라.”


그러다
까짓 싹이 안 트면 어떤누.
시작조차 하지 않은 것보다는 낫다.
잠시 서운하더라도 내 삶에 큰 손해가 있는 것도 아니다.
싹을 기다리는 동안은 행복할 테니까.

삶도 그렇다.
결과도 중요하지만,
시작하고 정성을 들이는 그 과정부터가 설레는 법이다.
시작하지 않으면 결과도 없다.

오늘, 작은 설레는 기다림을 시작한다.




손을 씻고 글을 쓰는 내내
손끝에 스며든 망고향이 오래도록 여운을 남긴다.

여름인가 싶게 선선하고, 비를 뿌린다.

보사노바 템포가 설레는 내 맘 같으다.

- 아스트루 질베르트<The Girl from Ipanema>

https://youtu.be/hkOJ-9_Ng4s?si=j4O2Z8b9yJnkj0Az


keyword
작가의 이전글이탈된 감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