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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胃), 그보다 그 어디 위(位)

by 최태경

2025. 8.28 목요일

여전히 덥고 뜨겁다. 몸도, 마음도 심란한 날이다.
어쩌다 장기 복용이 되어버린 정형외과 약(손가락과 어깨 석회 통증) 탓인지, 속이 메스껍고 울렁거리고 쓰리다.
안 되는 줄 알면서도 얼큰한 게 자꾸 땡긴다.

“에라 모르겠다. 얼마나 산다고.”

읽던 스토너를 챙기고, 눈곱만 떼어낸 채 대충 걸쳐 입고 얼큰이 칼국수집으로 향했다.
벌건 국물 위에 막 맛이 들기 시작한 열무김치를 얹어 칼국수 면을 건져 호로록~켁, 데었다.
데인 혀가 얼얼해지도록 국물까지 들이키고 나서야 비로소 살 것 같았다.
터질 것 같은 뱃속의 거북함보다, 위(胃), 그보다 그 어디 위(位)가 개운해진다.


작은 공원이 내다보이는 카페에 앉아 창밖을 바라본다.
잔바람결에 실렁실렁 나뭇잎이 흔들린다.
지난 봄볕에 찬란히 꽃 피웠던 벚나무, 이제는 단풍이 들고 있다.
그 사이 호로록 떨어지는 나뭇잎.
서두르면 탈이 난다 했는데, 계절도 삶도 그렇다.

카페 안에서는 벤의 미워도 다시 한번이 흘러나온다.

살아내도 살아내도 어렵다.
나이 들면 현명해질 줄 알았다.
그런데 오히려 더 조심스럽고, 더 망설여진다.
세상이, 삶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걸 경험으로 알기 때문이리라.
아는 만큼 무섭다.


아브라카다브라~
주문을 걸듯 좋은 글, 좋은 음악으로 달래 봐도 오늘은 잘 먹히지 않는다.
다빈치의 이 사랑이 이어지고, 음악이 흐를수록 마음이 짠하다.
하기야, 노래가 신난다고 낙엽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맘이 바뀔 리도 없겠지.

이번 주에 작업이 들어와야 끝내놓고 맘 편히 입원할 텐데.
몇 달간 정형외과, 한의원, 약은 물론 주사·물리치료·체외충격파·도침·약침… 오만 치료는 다 해본 것 같다.
묵은 김치도 아니고, 묵힌다고 좋아질 게 아님을 알기에 결국 어제 수술 날짜를 잡고 왔다.

통증으로 잠을 설치던 어느 날 새벽, ‘신내림이라도 받아야 하나’ 하는 엉뚱한 생각이 스쳤다.
딸아이가 그런 말을 했다면 등짝 스매싱감일 헛소리임을 알면서도, 별의별 생각이 다 든다.
치료 초반에는 분명 나아질 거라 믿었는데…

척추 수술도 해봤으니, 수술이 무서운 건 아니다.
문제는 후유증이다. 손의 감각이 떨어질 수 있다니, 그게 두렵다.
그림 그리고, 만들고 악기를 다루는 걸 좋아하는 내 삶에 큰 걸림돌이 될 수도 있기에 더 그렇다.
사서 걱정임을 알면서도 미리 걱정해 본다.

아침에 눈을 떠 파라핀 치료, 저주파 치료, 마사지를 하니
“어? 움직임이 좀 나아지나?” 싶다가도
곧, 도로 아미타불.
그래, 종국에는 수술이 답이겠지.

윤지환의 슬픈 초대장, 이어서 윤아의 우산.
에휴, 음악이 왜 이리도 슬픈겨.

사장님 미워-

오늘 같은 나는, 대체 어떻게 달래줘야 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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