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상수리나무가 좋다.

by 최태경

겨우내 눈 쌓이던 시린 가지에 연초록 물이 오르면, 반복되며 찾아오는 봄이지만 자연의 경이로움 앞에 대부분의 사람이 삶의 희망을 품게 된다.

뜨거운 여름날은 빠빳한 진초록 잎사귀를 펼쳐 그 아래로 부는 바람을 싱그럽게 만들어준다.

나뭇잎 사이로 부서지는 햇살은 연인들의 달큰한 눈빛처럼 눈이 부시다.

바람이라도 불게 되면 나뭇잎 서로 부비는 소리는 쉬지 않는 수다쟁이처럼 요란하다.

올해는 유난스럽게 비가 많이 온다.

지나갔나 싶은데 곧이어 다른 태풍이 올라온다. 거센 태풍이 지나간 자리에 널브러져 발밑에 나뒹구는 나뭇가지들.

측은지심이 인다.

거센 바람이 얼마나 쥐어뜯어 흔들어 놨으면 맥없이 넋을 놔버린 걸까. 저리 찢겨져 내동댕이쳐질 땐 또 얼마나 힘들었을까.

감정이입 때문일까.

맘이 아리고 눈길이 간다.

너도 그랬니?

인정사정없이 흔들어대는 바람에 놔버린 거야?

못된 바람 같으니라구...

쳐다만 보다 가지 하나 주워 들어 한참을 상수리나무 밑에서 맴돈다.

세상사 돌아가는 게 다 이유가 있겠지만 순리대로 되지 않는 것도 있으리라. 가지를 찢어 내놓은 상수리나무도, 내 발등에 찍힌 수난의 시간도, 데일 듯 뜨거운 열기와 모진 비바람을 에너지 삼아 알차게 여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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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수리나무 열매도 나도...


내 등처럼 튼실하니 넓적한 나무 기둥.

그 굴곡진 기둥에 등치기를 하고 나면 몸속 깊은 속에서 뜨어억~ 하고 트이는 숨소리가 난다.

매미 소리 요란하던 뜨거운 여름이 지나고, 태풍이 몰고 온 이번 비가 지나고 나면, 옆구리를 비집고 찬바람이 느껴지게 될 테지.


https://youtu.be/cZ4uMn1MZ5k

떨어지는 갈잎에 이브 몽땅의 '고엽'을 찾게 되면 어김없이 가을은 시작된다.

'올해는 유난히 옆구리가 시릴 예정입니다'

미리 조심스러운 점괘 예보도 나왔다.ㅜㅜ 시시각각 달라지는 요즘 일기예보처럼 점괘 예보도 달라지기를 바래본다.

가을 산책길 상수리나무 밑을 걷다 보면 뽀작 뽀작 상수리 열매 깨지는 소리가 난다. 밟지 않으려고 요리조리 피해 보지만 한눈팔다 보면 그게 맘처럼 쉽지가 않다. 툭~하고 떨어지는 열매 하나.

'도토리'

올 가을 저 상수리나무에 얼마나 많은 도토리들이 열리게 될까?

임진왜란 당시 피난길 선조의 입맛을 사로잡아 수시로 수라상에 올렸다 하여 상수리나무라는 여담이 있다. 요즘에야 세상 좋으니 수시로 먹을 수 있지만 오늘은 비도 오는데 도토리묵무침에 막걸리 한 잔 걸쭉하게 걸치고 싶으네.

벌써 실한 가을이 기다려진다.


http://naver.me/FECZCn3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