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잘한 돌 틈을 춤추듯 돌아, 물고기 무리와 조우를 하고, 수면에 떠다니는 나뭇잎의 항해를 도와주기도 하며 알 수 없는 미지의 세상을 향해 끊임없이 흐른다. 상황에 순응하며 흐른다.
순응하는 삶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걸까?
나름대로 잘 선택해서 판단하고 행동하며 살아왔다고 생각했다. 그때는 현명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결과론적으로 봤을 때는 실패다.
실패는 허망함을 남긴다. 되돌아간들 다른 판단을 할 수 있을까? 더 잘 살아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어떠한 변수가 내 운명을 좌지우지할지 모른다. 되돌릴 수 없는 과거를 아파하는 것은 이제 그만.
지금의 상황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숙제 중이다.
부러질지언정굽히지 않는 대나무로 살 것인가? 거센 비바람에 휘청 거려도 쉽게 부러지지 않는 갈대로 살 것인가?
어떤 선택을 하던지 정답은 없다.
정답은 내가 만들어 가는 것이다. 신중하게 선택했다면 그것이 최선의 선택이라 믿고 살아내면 되는 것이다. 세상 모두가 잘되기만 하겠는가. 받아들이고, 인정하면 편해진다.
내 삶을 뒤돌아보면 잘못된 선택임에도, 노력하면 되는 줄 알았다. 어느 순간 아닌 걸 알았으면서 나아질 거라 스스로를 속여가며 아둔함을 자처하고 너무 멀리 와 버린 것이다. 되돌릴 수 없는 게 시간이다.
이제 좀 쉬고 싶다.
여기가 내 끝이 되더라도, 바램도 쉬고, 지친 육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고 싶다.
산사의 처마 끝에 매달린 풍경소리처럼 계곡의 물소리는 사람을 편안하게 해 준다. 스트레스로 굳어진 마음 근육들을 이완시킨다.
계곡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걸터앉았다.
산 위로 산 아래로 등산객들의 발소리, 말소리가분주히 스쳐 지나간다. 바쁜 사람들은 어디를 가든 바삐 움직인다.
봄도 저리 바삐 오겠지.
지난가을 떨어져 쌓인 갈잎, 눈 쌓인 추운 겨울을 어찌 이겨냈을지 돌에 낀 푸른빛을 잃지 않은 이끼들.
다들 추운 겨울을 잘 이겨내고 있었다.
끼니를 거르긴 했지만 허기가 지는 건 아니었는데, 뜬금없이 연양갱이 먹고 싶어 산 초입에서 커피랑 사 들고 왔다. 먹고 싶다고 조르는 애들 더러만 뭐라고 할 일이 아니다.
먹고 싶은 것은 별것도 아니다.
구운 쫀드기, 길거리 어묵, 풀빵 한쪽, 구운 오징어 쭈욱 찢어 한 첨 질겅질겅 씹고 싶다. 일단 생각이 들면 도통 누그러지지 않는다. 정작 먹을라치면 쫀드기 한 봉지도 못 먹는다. 기껏 서너 줄이 다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식탐. 쓸데없는 욕구다.
크게 연양갱을 베어 문다. 무슨 변덕인지 금세 입안이 달큰해져 다 먹기가 버겁다. 커피를 사 오길 잘했다. 합성향료 때문에 원하는 커피 맛은 아니지만, 목은 개운해진다. 그리 먹고 싶었는데 정작 한 입 먹고는 맘이 바뀌어 밀려난 연양갱을 바라보며, 이건 뭐지? 변죽이 죽 끊듯 하다니.
살면서 얼마나 많은 욕망을 다스리고 살까.
손등을 스치는 찬바람이 마음의 문을 두드린다. 살랑거리며 생채기 난 맘을 달래준다.
얼마나 앉아 있었는지, 추위도 타지 않게 생긴 빵빵한 방뎅이가 배기며 냉기가 올라와 한량 노릇을 막는다. 쓸데없는 생각 그만하고 하산하란다.
몸살 기운이 드는지 목이 아프다. 이른 봄맞이로 얇은 옷차림을 하고 나왔더니 찬바람을 제대로 맞았다.
진달래꽃망울에 물오르고, 개울가 버들강아지에도 솜털이 풋풋하다.(멀리 떨어져 있던 녀석들이라 사진이 아삼삼 흐리네)
봄이 되면 낙엽 되어 떨어진 자리에 새살이 돋아난다. 심란하게 부는 봄바람이 싫지 않음은...
이 바람이, 이 공기가 희망을 꽃피울 봄을 데려와 내 곁에 데려다줄 것을 알기 때문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