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설레는 이유

by 최태경

엊그제 일을 다시금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다.

나이가 들면서 가슴 뛰는 일이 줄어들게 된다. 생각만으로도 그러하니, 오토바이 안장에 올라타고 있을 때는 어떠하겠는가.

바람에 흩날리는 벚꽃잎이 가슴 안으로 날아든다.

벚꽃 흩날리면 의례적으로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아주 오래전 애니메이션으로 봤던 빨간 머리 앤.

에이번리 초록지붕 집으로 가는 매슈 아저씨가 모는 마차 위로 한없이 떨어지는 벚꽃 향연. 그 장면은 매년 맘속에서 다시 살아난다.

엉뚱한 데가 있지만, 심성 고운 앤. 두려움을 이겨내고 불운에 굴하지 않는 긍정적인 앤. 작은 것에 소중함을 아는 그녀. 벚꽃 아래서 잠시나마 말괄량이 감성 소녀 앤 셜리가 되어 본다.

토요일에 커스텀한 세컨드 째깐이 부릉이를 타고 산길을 누볐다.

대청댐 둘레에는 숨은 비경들이 많다.

인적이 없는 길.

비포장 임도로 접어들면 흙먼지 날리고 돌부리에 치이며 쿵더덕 쿵쿵, 덜커덩 퉁퉁, 터덜터덜 바이크가 장단을 치며 괴이한 춤을 춘다.

위험천만한 비탈을 올라 내려다보이는 산과 호수가 다 내 거인 듯 흐뭇하다.

잠시 정복자 칭기즈칸이 되는 호사를 누려본다. 어디선가 매 한 마리가 날아와 내 어깨에 앉을 것만 같다.^^

마지막 클리어작업을 하면서 티끌때문에 애를 먹었던 헬멧커스텀 작업. 고생한 보람이 있다. ㅎ하늘과 나를 담아주니 그저 뿌듯하다.

올해는 늦어서 진달래꽃 맛은 못 보려나 했는데 그늘진 비탈에 핀 꽃이 감성의 갈증을 해소시켜줬다. 꽃수술까지 야물딱지게 입에 넣고 나니 그리움이 인다.

어릴 적 나물 캐는 엄마를 따라나서 따먹던 그 맛, 건강하고 곱고 이뻤던 엄마의 젊을 적 모습, 냉이며, 쑥, 벌금자리, 꽃다지 소쿠리 한가득 옆에 낀 엄마 뒤를 따라 졸랑졸랑 집으로 돌아오던 만선?의 행복했던 시절. 저녁상에 오른 봄나물의 향긋한 추억. 진달래 달큰 쌉쌀한 맛에 잠시 추억이 소환된다.

아무리 고파도 내년을 기약해야만 하니 벌써 그리워진다.


둘째 날 일요일 라이딩.

파란 하늘빛에 심장이 물든다.

산비탈 푸릇한 대지 위에 융단처럼 펼쳐져 핑크빛으로 물들이는 복사꽃 무리(영동 주요 특산물 중의 하나가 복숭아다 보니 봄이면 복사꽃이 지천이다.), 보리밭의 어린 보리 수염이 고개를 내밀어 바람과 조우하고 내게 손 흔들어 준다. 개울물이 봄 햇살에 반짝거린다. 물속에 요정들이 일제히 내게 환호성을 보내주는 것이리라.

아아안~~녕~~~ 잘하고 있어.

다 잘될 거야~~~

힘내~~~


팔백 고지(도마령) 굽이굽이 도는 핸들 잡은 손이 들썩거린다. 떨어지는 꽃잎을 잡고 싶다. 꽃잎과 함께 핑크빛 행운이 올 것만 같다.(위험하니 핸들을 놓을 수 없어 떨어지는 꽃잎은 눈으로 잡았다) 평지에는 비바람 때문에 꽃잎을 다 떨구었는데 고지가 높아서 그런지 늦게 핀 만개한 벚꽃에 맘이 홀린다.

꿈인지 생시인지 어느 곳을 봐도 빠져들지 않는 곳이 없다.

혹한기 훈련중 순직사고로 유명해진 민주지산. 오른쪽 턴, 왼쪽 턴 꼬불꼬불 올라 도마령 날맹이

라이딩 중에는 사진을 찍을 수 없으니 머리로, 가슴으로, 심장으로 순간을 찍는다.

사진을 찍으려고 멈춰 서다 보면 흐름이 깨진다. 예전에는 사진으로 담지 못해 아쉬웠는데 다 가질 수 없음으로 욕심이다. 그나마 잠시 쉬어가는 곳에서 짬을 내 몇 컷을 찍는다. 나중에 들여다보면 지치고 힘든 일상 속에서 소소한 행복이 된다. 담지 못한 풍경까지 선연하게 리플레이된다.


눈만 뜨면 세상 밖이 이렇게 축제를 펼치고 있다는 것을 아니, 안에서 딴 일을 해도 맘은 호시탐탐 밖으로 나갈 구실과 명분을 찾아 용을 쓴다.(허리 수술한 지가 8개월. 다른 척추까지 경고를 받은 상태라 주위에서는 눈에 쌍불을 켜고 라이딩을 말린다. 사람이 나고, 가는 것은 타고 난다 했거늘 더 살고 싶어 용을 쓴들 진시황도 못 한 일을 내가 하겠는가. 인명제천^^) 맘은 벌써 바람난 처자가 된다.

내 사주에 역마살, 한량 끼를 타고난 것일지도ㅎ

허나 이제까지의 삶을 뒤돌아보면 노예 사주?

남은 날이나마 한량 사주로 살 수 있기를

비나이다~ 비나이다~

달 밝은 밤 정화수라도 떠 놓고 기도해볼까.^^


부르릉~~~

어디선가 엔진 소리가 지나간다.

지난 주말 무리한 라이딩 덕분에 파스로 도배를 했으니 참자.

사진을 뒤적거리고, 짧은 글을 쓰는 거로 바람을 잠시 잠재워본다.


ㅎ조만간 또 나갈터이니~~~ 기다림으로 맘이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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