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막두야

by 캘리그래피 석산
진도 팽목항에서 조도 어류포항으로 출항하는 새섬두레호에 이삿짐을 싣고 있다.

2017년 8월 27일은 본인이 20여 년간 서울생활을 접고 고향 진도 새섬으로 낙향하는 날이다.

버릴것은 다 버렸지만, 그간의 작가생활 8년동안 쌓아 온 때묻은 짐들이 그래도 1톤차 가득이었다.

혹자는 "왜 지금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는데 시골외지로 내려가느냐" 반문도 했지만, 나의 깊은 속내를 모른채 꺼내 든 말이다.

7남매 중 막내로 태어나, 아직도 혼자인 나에게는 여든일곱의 어머니가 언제나 아른 거릴 수 밖에 없었다.

다른 가족이야..건사할 자녀들이 있고 직장생활을 섬에서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기에 귀향하고 싶어도 못하는 현실속에서 본인만이 자유로웠기 때문에 쉽게 낙향을 선턕할 수 있었다.

부모가 살아계실때 봉양하는게 자식된 도리임에는 어느 누가 부인할 수 있을까? 살아 생전에 어머니와 함께 말동무도 해드리고, 어머니의 손발이 되어 주는것!

그게 가장 큰 효의본이 아닐까 싶다.

돌아가시면 후회해 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어머니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생각이 고향으로 머리를 돌리게 한 주된 이유중 하나다. 작가일이야.. 어디든지 상관이 없다는 게 나의 지론이었고, 낙향을 결정하고 시골로 내려오니 도시생활의 긴장과 팍팍함이 눈녹 듯이 사라지고 행복한 시간만이 어머니와 나에게 존재할 뿐이다.

어머니 강복덕 여사와 함께

시골 낙향 3일째 되던 오늘 오후 4시경.. 마을 이장께서 바다 일을 끝내고 오셨는지 숨 가쁘게 마을회관의 마이크를 잡았다. "노인회에서 마을 어르신들께 따뜻한 저녁밥상을 회관에 준비했다면서 한 사람도 빠짐없이 5시까지 저녁식사를 하러 오십시오"라고 안내방송을 하셨다.


어머니는 힘든 육신을 이끌고 마을회관으로 향했고, 20분도 안되어 다시 집으로 돌아오시면서 "막두야! 막두야!!" 연신 두번을 부르셨다.

떡과 전복죽을 검정 비닐봉지에 곱게 싸가지고 오셨던 것이다.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막두야(막내의 비속어)' 캘리그래피

평소 때는 거동이 불편해 외출을 자주 안 하시는 편인데 오늘은 막둥이를 생각해서인지 자신은 제대로 드시지도 않고 음식이 식기 전에 빨리 집으로 서둘러 가지고 오셨던 것.


어느 누구의 부모인들 안그랬을까?마는 어머니의 자식 사랑은 다 큰 성인이 되어도 물가에 내놓은 어린아이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

어머니와 나는 전복죽과 떡을 함께 나누어 먹었다.


그리고, 어머니는 육자배기를 부르며, 기분 좋은 저녁을 맞이하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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