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경기도 광주 어느 봄날,
며칠 전부터 하늘은 먹구름으로 온통 수묵화를 그려 내면서 봄비가 내렸다. 그 당시 나는 남한산성 줄령 아래 조용한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집뒤로는 숲으로 둘러 쌓여 늘 기분 좋은 곳이었다.
새벽까지 비가 내리더니 아침에서야 비는 그치고 안개는 숲을 휘감고 있었다. 세탁기를 돌리려고 배란다로 향했다. 창문 너머로 한 폭의 수묵화가나를 유혹하기 시작했다. 반사적으로 카메라를 찾아 연신 촬영에 들어갔다. 얼마나 지났을까? 산등성이 위로 아침 해가 고개를 내밀면서 비로소 수묵향연은 끝이 났다.
'우후지실(雨後地實: 비 온 뒤 땅이 굳어진다.)'라고 했던가?
비 온 뒤에는 꽃들이 피겠지요. 비온 뒤에는 하늘이 더 푸르고 땅도 더 굳어지겠지요. 비 온 뒤에는 다시 기온이 높이 올라가겠지요..,
사진촬영을 끝내고 위 사진의 제목 명명(命名)을 ‘비 온 뒤’로 정하면서 흔히 생각해 낼 수 있는 것들이다. 어쩌면 당연할 지 모른다.
제목이 정해지면 글씨를 써야 했다. 비 온 뒤 사진에 들어가는 글씨 도구는 어떤 걸로 선택해야 할지? 글씨 느낌은 또 어떻게 표현해야 하고, 글씨의위치는 어디에 두어야 할지를 고민해야만 했다.
분명한 것은 사진과 글씨가 일반인이나 전문가들이 봤을 때 이질감이 안 들어야 한다는 것을 가장 큰 숙제를 안고 써야한다는 것이다.
글씨도구는 가지를 물에 담그면 물이푸르게 변한다는 ‘물푸레 나뭇가지’로 사용했다.
나뭇가지의 특성상 먹물을 묻혀 글씨를 쓰게 되면 일반적인 양모(羊毛: 양의 털)에 비해 부드럽지는 않지만 나뭇가지에서 느껴지는 글씨자체의 부드러움은 있다.
여기서는 어떤 형태의 글자를 쓰느냐에 따라 차이는 있을 수 있겠지만, ‘비 온 뒤’의 글자에서는 전체적인 사진의 수묵느낌과 나뭇가지와의느낌은 먹물이 흡착(吸着)되지 않고 약간의 번짐 현상이 있어 대체적으로 사진과 글씨가 조화를 이뤄냈다.
또한, 글씨의 위치는 서로가 침해되지 않는 어느 특정한 구역에 배치해서 불편함이 없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