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매화꽃 필 무렵

by 캘리그래피 석산

봄날의 서정 매화꽃은 나에게 위로와 편안함을 안겨주었던 봄꽃 중 하나다.

2008년 7월, 혹독한 기업 사정바람의 칼끝에 존재감 없이 조용히 회사를 떠나야 했던 시기..,

그렇게 이름 없는 작가로 살아야 했던 처절한 시절의 2009년 2월은 매서운 추위 속에서도 꿋꿋하게 꽃망울을 터뜨린 봄의 전령, 매화가 있었다.


서울 양재동 근처 주택 사무실 한편에 3평 남짓한 나의 간이 작업실이 있었고, 넓다란 마당에는 매화나무 한그루가 이른 봄부터 꽃을 피우고 있었다.


글씨를 먼저 생각해야 하는 캘리 사진은 사진 촬영에 들어가기 전 무엇보다 우선시 되는 것이 여백의 활용과 원근감, 그리고 심도 조절이다. 전체를 프레임 안에 넣고자 했으면 원근감이나 심도 부분은 아마 고려하지 않았을 것 같다. 매화 꽃잎 하나에서 포괄적인 느낌을 표현해야 하는 상황에서 망원렌즈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한 송이 매화꽃은 그렇게 카메라에 담겨 영원히 지지 않는 꽃으로 내게 왔다.

거칠고 둔탁한 나뭇가지 속에서 피어난 매화꽃은 고결하면서도 청아하고 아름다운 순박한 시골 여인 같았다. 둔탁한 나뭇가지를 표현해 낼 수 있는 글씨 도구는 무엇일까?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뿌리가 단단하고 거칠며 질긴 대나무 뿌리를 자연스럽게 생각해 냈다.


양재동에서 가까운 청계산 가는 길에 대나무를 전문으로 하는 육림 조경이 불현듯 생각이 났고, 그 길로 조경 집에서 어렵지 않게 대나무 뿌리를 구해 작업실로 다시 왔다.


캘리그래피의 진수는 도구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대나무 뿌리로 쓴 ‘매화꽃 필 무렵’에서 다시 깨닫게 되는 계기를 마련한다. 어떤 의도를 가지고 무엇으로 쓰느냐에 따라 글씨의 형태가 미쳐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그 이상으로 달라진다는 것을 알게 해 준 귀중한 시간이었다.

작품명.매화꽃 필무렵 NO7.jpg 매화꽃 필 무렵 (75*44)

현재 내 작업실에는 2009년에 사용했던 청계산에서 구해 온 대나무 뿌리와 2010년 SBS 수목드라마 ‘나쁜 남자’를 썼던 대나무 뿌리가 함께 걸려 있다.

매화꽃 필 무렵 대나무 뿌리.jpg 2009년 청계산에서 구해 온 대나무 뿌리가 원형대로 보존되고 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1 비 온 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