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 칠 전 평생을 일구고 가꾸셨던 시골 어머니 밭에 아로니아와 매실 묘목을 심었다.
척박해진 땅에 새로운 생명이 자라나는 곳에 4일 동안 물을 주고 주변에 잡초도 제거해 주며 농사꾼의 입장에서 정성을 다해 보살폈다. 묘목을 심은 지 5일째 되던 날! 하늘에서 쌀비가 내렸다.
봄비는 그렇게 때를 맞춰 생명에 대한 간절함을 일깨워 주었다.
‘봄비를 쌀비’(꼭 필요한 때 적당하게 내리는 비)라 했던가?
가뭄 끝에 내리는 비는 온 산하의 봄꽃을 더욱 화사하게 피게 했고, 실개천에도 물이 흐르게 했으며, 우의를 입은 농부들은 물꼬를 보느라 바삐 움직였다.
그런 봄비의 추억은 아련하게 사진 한 장에 담겨 있다.
수년 전, 전북 김제 금산면의 한 농촌마을에 볼 일이 있어 내려갔다가 봄비에 흠뻑 취한 우사 철제에 맺힌 빗방울이 눈에 들어왔었다. 떨어질 듯 말 듯 한 빗방울은 유리구슬처럼 영롱했다.
늘 차 안에 카메라를 가지고 다니기 때문에 순간들의 생생한 현장을 기억하게 만든다. 접사 촬영(接寫撮影: 사진을 찍는 대상이 되는 물체에 렌즈를 가까이 대고 찍음. 또는 그런 방법.)으로 빗방울을 촬영해서 2차 작업을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사진에 대한 서체 방향과 제목이 정해지면 붓을 든다. 이번 작업도 자연과 친밀도를 높이기 위해 일반 서예 붓을 배제하고 향수 화병에 꽃아 둔 나뭇가지를 이용해 글씨를 써 내려갔다.
나뭇가지를 비롯한 특수 붓은 털이 없는 관계로 먹물의 농도 묻힘 안배를 잘 해야 글씨가 원하는 형태로 나올 수 있다. 나뭇가지 끝에 먹물을 많이 묻히면 글씨를 쓰는 동안 획과 획 사이에 번짐 현상으로 인해 글자의 자, 모음이 붙어버리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고, 먹물의 묻힘 깊이를 약하게 할 경우 글씨를 쓰다가 자, 모음자가 끊기는 현상을 목격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먹물의 농도를 감각적으로 진함과 연함을 스스로 익혀야 한다.
서체 전체를 다 쓰려고 하지도 말라. 나뭇가지 특성은 털과 다르다. 털은 먹물을 묻히면 어느 순간까지 먹물이 털 속에 잠재되어 있어 쓰려고 하는 서체를 한 번에 쓸 수 있겠지만, 나뭇가지는 먹물을 묻히는 순간부터 마르기 때문에 한 번에 글자를 쓰기에는 역부족이다. 글자의 장, 단에 따라 다를 수는 있겠지만 대부분 완벽하게 쓰기에는 무리가 따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