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지인으로부터 사진 한 장을 받았다. 동그랗게 보이는 것은 아마 원형 등이었고, 실루엣으로 처리된 벽 틈으로 강렬한 하얀빛이 실내로 비추는 형태의 사진이었다. 여기에 ‘소통’이라는 글자를 넣고 싶다면서 내게 보내왔었다. 보고 느끼는 것을 “그대로 살려보자”라는 결론을 내렸고, 원형 등속에 ‘소통’의 글씨를, 그 밑에 ‘벽에 창문을 내는 것’을 썼다. 미학적이지는 않지만, 사진을 직접적으로 표현해 냈다는 점에서 만족함을 표시해 줬다.
서로가 서로에게 언어로써 주고받는 일상의 대화에서부터 밀도 있는 내용들을 집약한 전문 토론회까지 말과 말이 오고 가는 것을 우리는 “소통‘이라고 한다. 그러나 소통은 말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저 위에서 사진 한 장을 제시한 것처럼 사람의 감정이입으로부터 나오는 것 역시 소통의 한 방법이다.
현대 사회에서 가장 빛나는 민주 전통을 자랑하는 의회는 ‘말하는 곳’이다. 때로는 일방적인 면도 있지만 자신의 주장을 피력하고 설득하는 가운데 경청의 예를 지키는 곳이기도 하다.
여기서 말은 대화(dialogue)를 뜻하고, 쌍방 간의 전달을 뜻한다. 영어 단어 'dialogue'는 그리스어 'dialogos'에서 유래되었다. 그리스 어원에서 보듯이 대화는 둘이서(dia) 말하는(logos) 것이다.
두 사람이 말한다는 것은 내가 한 번 말하면 상대방이 한 번 말하는 것이다. 내가 말하면 상대는 들어주고, 상대방이 말할 때는 내가 들어야 한다. 바로 이것이 말의 뜻을 전달하는 소통이다. 소통의 또 다른 말은 이해(understanding)이다. 입으로 말하는 대신 귀를 통해 듣는 것이다.
그렇다면 “소통의 자세”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초면의 사람을 만나면 가장 기본적인 인사가 명함을 주고받거나, 명함이 없으면 상대 전화번호를 알려주는 것이 처음 대면하는 사람과의 첫 소통방법의 시작이다. 그런데 유독 전화를 걸면 전화를 받지 않거나, SNS를 통해 전달해도 답변이 없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일부러 걸려온 상대방이 불편하거나 받고 싶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역시 소통의 부재에 해당하는 사안이다. 그런 사람을 보면 “전화기를 가지고 다니지 마라”라고 말하고 싶다.
기본적인 소통문화도 무시하면서 무슨 공공의 책임자가 되겠다고, 장이 되겠다며 유권자에게 표를 호소하는 선거판에서의 단상들..., 본인이 원할 때 소통하려고 하고, 원치 않으면 불통으로 일방통행하려는 사람들...
난 말하고 싶다.
“1년 넘게 단 한 번의 소통도 없는 연락처는 과감히 삭제해 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