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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하산이 즐거워야 좋은 산행이 된다

by 캘리그래피 석산

초입에 높게 뻗은 큰 나무숲이 있는 등산로들이 있다. 등산객들은 울창함에 탄성을 지르며, 정상을 향해 올라간다. 오르다 어느 순간 크게 자란 나무들은 보이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산 전체를 지배할 것 같았던 아름드리나무들이 산 위로 번식해 가는 데는 실패한다. 최정상에는 곧게 자란 큰 나무는 보이지 않는다. 잦은 풍파에 휘어졌거나 작은 나무들 밖에 없다. 세찬 바람과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남으려면 바람의 반대방향으로 자신을 구부리거나 최대한 자신을 낮추어야 한다. 가장 높은 곳에서 최악의 조건에서 생존 지혜를 깨우친 겸허한 나무들만이 자라고 있다. 그들은 힘자랑하는 큰 나무들을 발꿈치 저 아래에 두고 지긋이 굽어보고 있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다. 초년기에 삶을 좌우할 것 같았던 거창한 지표들이 중년을 넘기고 나면 그저 부질없어 보인다. 노년에 접어들 즈음이면 거창하고 잘난 사람보다는 “변함없는 사람, 편안한 사람”이 더욱 높아 보이고 소중해진다.


우리는 삶 자체가 모두 오르는 것에만 익숙해져 있다. 성적도, 지위도, 재산도 늘 오르고 많아져야 한다. 게임하듯 삶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전쟁하듯 정상에만 오르려고 한다. 그러나, 오르는 것보다는 오른 이후가 더 중요하다. 산 정상에서의 식사는 늘 즐겁다. 네 것, 내 것 구분이 없기 때문이다. 내려갈 때 짐이 되니 아낌없이 나누고 모두 소비한다.


아무리 산행을 좋아해도 정상에 머무르는 시간이 그리 오래가지는 못한다. 또, 영원히 정상에 머물 수 있는 사람도 없다. 나눌 수 있을 때 나누고 감쌀 수 있을 때 감싸 안아야 한다.


인생의 묘미는 오히려 내려가는 데 있다. 혼자서 헐떡이며 내려가는 무료함이 아니라, 담소를 나누며 주위의 꽃과 나무를 즐길 수 있어야 한다. 계곡에 발을 담그고 휴식을 취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잘남을 뽐내는 것이 아니라, 비우고 유람하는 여유가 있어야 한다. 산을 오를 때의 피로를 내려갈 때 잘 풀어야 좋은 산행이 된다. 정상 정복은 산행의 끝이 아니라, 산행을 즐겁게 마무리하는 또 다른 시작이다.


은퇴도 삶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출발점이다. 내려가는 것은 두려움이 아니라, 새로운 설렘이 되어야 한다. 즐거운 하산이 삶을 빛나고 아름답게 하기 때문이다. [출처: 故황태영 수필집 ‘나의 봄은 당신입니다’ 중에서]

하산이 즐거워야 좋은 산행이 된다_ 캘리그래피 석산 作

“망자(亡者)는 말이 없다. 단지, 흔적만 남아 있을 뿐이다.”


가슴에 별이 되는 북 레터 “나의 봄은 당신입니다”,“갈대는 바람과 다투지 않는다”저자이자 대한북레터협회 회장으로 역임하다 지난 2017년 11월 암 투병 중 별세했다.


1961년 경북 풍기에서 태어난 故 황태영 선생은 월간 ‘국보문학’에 수필가로 등단, 2009년 7월 수필집 “풀이 받은 상처는 향기가 된다”를 펴냄으로써 다도와 글쓰기를 즐기며 인간의 대한 따뜻함과 그리움을 대중들에게 전달한 마음이 따뜻했던 수필가였다. 2015년 대한북레터협회를 함께 창단하여 “북레터 365 운동’을 통해 '소통하는 사회, 더불어 행복한 세상'을 꿈꿨던 분이기도 했다.


오늘처럼 故 황태영 선생이 그리움과 긴 울림으로 다가오는 것은 어쩌면 그가 남긴 따뜻함이 아직도 보온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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