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답게'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2002년 7월부터 2003년 9월까지 총 124부작으로 방송되었던 '야인시대'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요즘에는 예전의 명작들을 케이블 TV에서 다시 보기 개념으로 재편성 방송해 주는 것을 심심찮게 보게 되는데.. 며칠 전 채널을 돌리다가 야인시대 마지막 회를 우연히 시청하게 되었다.
암울한 시대를 살아가야 했던 풍운아들의 이야기를 장군의 아들 '김두한'을 중심으로 일제시대를 거쳐 유신정권에 이르기까지 파란만장의 생을 살면서 '정의'라는 이름 앞에서 “김두한답게” 마지막 국회에서 사카린 밀수 사건 발언을 하면서 정부 관계자들에게 "똥물이나 쳐 먹어라"며 똥 물을 뿌린 장면에서 속이 뻥 뚫린 듯 대리만족을 했다.
그렇다면, ‘나’라는 존재는 과연, ‘나답게’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었을까? 내심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수욕정이풍부지(樹欲靜而風不止)하고,
자욕효이친부대(子欲養而親不待)니라.
나무는 가만히 있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아니하고, 자식은 효를 다하고자 하나 부모는 기다려 주지 않는다. -논어
서울생활에 지쳐가던 2017년 어느 여름날..
그날도 저녁 8시쯤 시골에 계신 홀어머니께 안부전화를 드렸다. 유일하게 어머니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아버님이 돌아 가신지 12년 전부터 빠지지 않고 매일 안부전화를 드렸던 것 같다. 어떤 날은 어머니는 막걸리 한잔을 걸치고 “막 두야! 내 막 두야, 이러다 나 죽으면 어떡하냐”라는 취기에 말을 종종 하셨고, 이내 마음은 미어져 내린 적이 많았다. 더 이상은 안 되겠다는 생각이 늘 마음 한구석에 자리하던 지난 2017년 8월, 과감하게 20여 년이 넘는 직장생활의 종지부를 찍고 시골행을 선택했다.
어머니와의 시골 살이는 너무나 행복했다. 매일 어머니를 모시고 밭에 나가고 24시간을 어머니와 함께 한 시간들이 내 인생에서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어머니를 위해 손수 삼시 새끼를 차려드리고, 어머니와 함께 가을걷이를 했고, 텃밭을 일궈 겨울 무를 심었던 기억들.. 내려온 지 3개월 만에 지난해 11월 21일 갑자기 뇌경색으로 쓰려졌고, 쓰러진 지 벌써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두 달이 넘게 병원 중환자실에서 의식이 돌아오지 않았고, 담당 주치의는 병원에서 해야 할 일이 없다며 준비를 하라고 까지 했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기적적으로 회생하셨고, 지금은 수족, 언어마비는 있어도 가족들을 알아보신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이제는 여든아홉의 어머니께 바라는 것도 없다.
나의 1년 전 선택이 지금에 와서는 얼마나 잘했는지 새삼 나에게 고맙다는 생각을 한다.
혹자는 말한다. “부모를 봉양하고 건사하는 것은 자식들의 선택이 아니라 필수요, 의무라고 말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마음은 있으나, 바쁜 일상 속에서 먹고살기 힘든 환경에서는 늘 부모는 뒷전으로 물러날 수밖에 없다.
나답게 살아간다는 것.. 어쩌면 자신도 그만한 여건이 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단 하나 "부모가 돌아가신 후에 후회하는 삶은 살지 않으리라”라는 굳은 마음이 늘 한편에 자리하고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오늘도 막내아들을 알아보며 한없는 미소를 보내주시던 어머니, 내가 이 세상을 살면서 '나답게'.. 후회 없는 선택에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