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지리산’에서 하준규는 흘러가는 은빛 강물을 보며 죽음처럼 무겁고 돌처럼 차갑게 절규하듯 말한다.
"우리에게 조국은 없다. 단지, 산하만 있을뿐이다."
한국전쟁 중 인민군 중장 계급장을 달고 인민 유격대(빨치산) 총책으로 활동했던 하준수가 소설 속의 주인공 하준규로 등장한다.
하준수, 그는 일제강점기와 해방 후의 격동기, 한국전쟁까지 역사의 격랑 속을 관통하는 삶을 살았다.
일본 유학 중 학병 징집을 피해 고향으로 돌아왔고 지리산 칠선계곡에서 다른 학병 거부자 73명과 함께 항일투쟁 결사체 ‘보광당’을 결성했다. ‘널리 빛을 비추자!’는 의미였다. 해방 후 잠시 이승만의 경호대장을 맡기도 했지만 부조리한 현실 속에서 탈출구를 찾듯 그는 결국 북으로 갔다. 김일성으로부터 중장 계급장과 ‘남도부(南到釜)라는 또 다른 이름도 부여 받았는데, ‘남단의 부산을 장악하라.’ 의미로 그가 지휘할 7군단의 작전명이기도 했다. 전쟁은 멈추었지만 그는 북으로부터 내쳐지듯이 고립됐고 54년 서대문의 형장에서 생을 마감했다.
이십여 년, 푸른 제복을 벗어야 할 즈음 숱하게 지리산을 오르내리면서 소설 속에서 하준규가 독백처럼 절규하듯 던진 그 말이 나의 발길을 막아서곤 했다.
역시 한국전쟁 중 북의 포로가 되어 강제노역에 시달리다가 탈북을 감행했던 이의 증언을 들으면서도 마찬가지였다. 적국의 권력에 예속된 적군으로, 자유를 박탈당하고 때로는 인간 이하의 강제노역에 시달렸지만 그들도 역시 조국으로부터 내쳐진 존재였다. 굶주림과 강제노역에 시달리면서도 그는 일말의 기대를 저버리지 못했다고 했다. 대한민국 정부와 대통령, 우리를 지휘했던 중대장이 살아있는데 때가 되면 반드시 우리를 찾으러 올 것이라며 서로를 위로했다.
국가의 존재와 실체는 무엇인가?
들짐승들에게 조국이 없다. 들짐승들에겐 생존을 위한 터전인 산하만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인간들에게 산하만으로 완성될 수 없는 한계와 의미를 추구한다는 차이가 있다. 어찌 보면 국가라는 유기적인 조직체를 이끌어가는 위정자들이 조국의 실체일 수가 있다. 민초(民草)라는 말, 김수영의 ‘풀’이라는 시를 읽어보듯이 말이다.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최근 남북의 화해 분위기 속에 불확실하고 신뢰할 수 없는 사안의 전개 및 주변 국가와의 문제는 이념 문제를 노출시키는 기제로 작용하고 있고 상황에 따라서 격화될 조짐도 보이고 있다, 이는 자유민주주의 정체성을 지켜가는 것에 한계와 힘겨움을 노정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역사라는 것이 사회주의 같은 집단주의와 개인주의의 대결이라면 집단주의는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듯 ‘일은 더 적게 하고 쾌락은 더 많이 즐겨라'라고 한다면 좀 그렇다.
이와 같은 현실의 문제는 어디에서 비롯되었고 조국이며, 국가라는 정체성은 무엇인가를 되짚는다는 것은 지난하고 미욱한 자에게 무력함을 스스로 불러들이는 격이다. 다만 지리산이라는 서사와 서정의 공간을 바탕으로 격변의 소용돌이 속에 굴곡진 삶을 영위해야 했던 3대의 삶을 재조명하여 가해자와 피해자, 방관자로서 각자의 모습을 투명하게 볼 수 있는 기회를 염원해 본다. [출처: 김창환 장편소설 "산하를 찾아서" 서문 중에서]
지난 2018년 8월, 소설가 김창환 선생이 내가 기거하는 진도 새섬을 찾아왔었다. 서울에서 한 걸음에 달려온 수고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360°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도리산 전망대', 100년의 역사를 훌쩍 넘긴 '조도 등대'를 둘러보며 천혜의 다도해 비경에 감탄사를 토해 냈다.
그리고, 내게 2019년 새해 출간하게 될 소설 제호를 부탁했다. "아니, 전화로 연락하면 될 일을 굳이 이 먼 곳까지 찾아왔느냐"라고 묻자.. "얼굴도 보고 사는 곳도 궁금했다"는 것.
김창환 선생은 소설책 제목을 '두고 온 산하'와 '산하를 찾아서' 두 가지 중 하나를 확정 지어 달라는 말까지 했다. 두 가지 책 제목을 연결하면 '두고 온 산하를 찾아간다'는 느낌이었다. 둘 다 과거형이지만 현재에서 산하를 재조명한다는 의미에서 '두고 온 산하'보다는 "산하를 찾아서"가 더 낫지 않겠느냐 역제안을 했고, 그 자리에서 "산하를 찾아서"로 결정을 내리기에 이른다.
조선의 해방, 민족의 비극 6.25 한국전쟁, 그 후 격동의 세월 속에서 해답을 찾으려는 "산하"의 존재는 무겁기만 했다.
서체 방향도 마찬가지였다. "무게감"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붓의 머리를 감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9년 1월 5일 김창환 장편소설 "산하를 찾아서"는 비로소 세상 밖으로 나올 수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