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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캘리그래피 석산 Jan 14. 2019

제3화 다시 시작해

바다를 둘러싸고 있는 섬마을은 바람과 태풍이 잦은 관계로 해변가를 걷다 보면 폐어구들이 눈에 띄게 들어온다.  그중 수거해 온 어구 중에는 폐 문어통발이 있다.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파도에 침식되고 바닷물에 잠겼는지 통발 속에는 이미 굴집을 형성하고 있었다.

오래된 폐 문어통발에는 이미 굴집이 형성되었다.

본인의 해양쓰레기 재생 작품화의 화두는 ‘자연 그대로 보존하면서 작업화’ 하는 데 있다. 하루 정도 보존 상태를 지켜보면서 폐 문어통발에 부여하는 글씨를 생각해봤다. 어느 누구도 버려지고 방치된 폐 통발을 거들떠보지 않는 쓰레기를 ‘재생’을 통해 거는 기대치를 유발하고 싶었다.      


한번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것을 기념하기 위해 ‘다시 시작해’라는 글씨를 넣기로 최종 결정하고 작업에 들어갔다. 폐목에 비해 플라스틱과에 속하는 폐 문어통발에는 각(刻)을 하지 않고 프린팅 기법으로 글자에 스프레이를 뿌렸으나 색 번짐이 심해 1차 시도는 실패로 끝났다. 2차 시도는 프린팅 대신 폐목처럼 각(刻)을 새기기로 했다. 폐목의 울퉁불퉁, 결의 불규칙적인 부분에 비하면 규칙적인 결로 인해 글자를 새기고 파내는 작업은 크게 어렵지 않았다. 

폐 문어통발에 글씨의 혼을 불어넣었다.

마감작업 역시 불안정한 프린팅 대신 유성페인트를 사용했다. 단지 한지가 아닌 플라스틱 재질에 쓰는 글씨는 사뭇 달랐지만 작업이 계속되면서 종이에 쓰는 것과는 또 다른 매력에 빠지게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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