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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캘리그래피 석산 Feb 25. 2019

제12화 옹기 덮개 글씨

여리고 고운 봄날

꽃향기 드리워

수줍은 듯이 요염한 자태 뽐내는

치렁치렁 휘감은 채 피어나는 꽃     

불어오는 바람결

너울대는 꽃다발

온통 연보라색 빛깔 향기 눈짓조차

부드러운 털로

덮인 꼬투리에다

환영이라는 꽃말

고이 간직하소서     

물 흐르듯 무수히 피고 지는 식물

싱그러운 초록세상 녹음 우거진 날

꽃무리 지어

더 예쁘고 매력적인

무딘 내 마음마저 이내 흔들어 버린

그냥 바라만 봐도

뿌듯한 마음

(출처: 손병흥 시인_ 등꽃)    

 

몇 해 전 양쪽 무릎 수술을 받고 재활에 실패해 끝내 세상과의 이별을 고했던 섬마을 아낙네의 집 우물가에는 크고 작은 항아리와 단지들이 서너 개가 주인의 체취를 느끼지 못하고 거미줄과 퇴적물로 뒤덮여 있었다. 이미 집은 비어있었지만 부모의 산소가 마을 어귀 밭에 모셔진 관계로 명절과 휴가철에는 자식들이 한 두번씩 들리면서 며칠 정도 묶다가 서울로 다시 올라가곤 했다.      

빈집 우물터 주변에서 수거한 작은 옹기들

집주인의 허락 하에 조그마한 옹기 2개를 가지고 왔다. 옹기 덮개 중 하나는 한쪽이 깨졌고 다른 하나는 멀쩡한 모양으로 오랜 세월 비바람에 잘 견뎌 온 것 같았다. 세척을 한 후 옹기는 ‘함께 버전’으로 글씨를 새겼고, 옹기 덮개에는 영원히 피어나 지지 않을 불멸의 꽃으로 글씨를 새기기로 했다.   

   

“꽃이 와서 저물도록 피어 있네.”     

수차례의 과정을 통해 작품으로 다시 핀 옹기 덮개

꽃을 검색하다가 먼저 누군가가 위 문구를 가지고 캘리그래피로 작업한 이미지를 봤다. 느낌이 좋았다. 똑같은 문구를 작자의 색깔과 느낌으로 표현해 보기로 했다. 옹기 덮개의 특성상 움푹 파인 모양에 글자를 새기기에는 여간 까다로운 작업 과정이 수반되어야 했다. 바르게 펴 있는 직각이나 수직의 물체에는 글씨를 새기는데 큰 문제가 없지만 원형과 굴곡진 형태는 나름의 방법들을 동원해야 한다. 먼저 글자가 들어가는 덮개 안쪽 움푹 파인 곳에 종이테이프를 바른 다음, 그 위에 풀을 바르고, 그 위에 부드럽게 해주는 다리미 풀 스프레이형 샤키트로 글자가 삽입된 종이에 뿌린 다음 옹기 덮개 안쪽에 원하는 위치에 가지런히 배치한 후 건조되기를 기다리면 옹기 덮개와 합을 이룰 수가 있다. 그런 다음 산업용 칼로 글자를 오려내고 유성 페인트를 이용해 파 낸 글자에 색을 입힌다. 여기서는 ‘꽃이’에서 ‘이’의 ‘ㅣ’ 자 꽃망울에 적색을 칠해 전체적인 글씨가 갖는 꽃의 이미지화를 부여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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