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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캘리그래피 석산 Apr 08. 2019

제16화 빗물(雨水) 받이의 진화

온종일 비가 내린다. 처마 끝 받쳐 놓은 빗물(雨水) 받이에는 빗물이 넘쳐난다. 봄 비가 대지를 흠뻑 적시고 남음이다. 비가 그친 후에도 지붕에 맺힌 빗물이 우수(雨水)에 간간히 떨어지고 있었다. 맺히고 뭉친 빗물의 끝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일주일 중에 사나흘 맑은 하늘을 보이다가 이틀 정도 봄비가 계속 내린 듯하다.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내린 비는 밭작물의 귀한 자양분으로 자리잡기에 충분한 양이다. 그렇게 새섬의 초여름 장마는 온 듯 안 온 듯 시작되었다.

 

장독 덮개 속에 한자 우수(雨水)를 써넣었다. 4년 전 명지마을(진도군 조도면 소재의 한 마을) 친구 집에서 대형 퍼포먼스 먹물 통으로 사용하기 위해 가져 온 장독 덮개는 행사나 촬영이 있을 때마다 사용했다가 평상시에는 처마 끝 빗물받이로 사용하는 다용도의 귀한 물건 중 하나다.  


원래 우수(雨水)의 개념은 24절기 중 2번째 날로 입춘(立春)과 경칩(驚蟄) 사이에 있는 절기를 뜻한다. 24절기는 기본적으로 태양의 궤도인 황도의 움직임을 기본으로 정해짐으로 양력 날짜에 연동된다. 우수는 태양의 황경이 330°인 날로 2월 19일 무렵이며, 대개 음력 정월에 든다. 입춘으로부터 15일 후가 되는 날로 봄의 기운이 좀 더 짙어져서 눈 대신 비가 내리고 얼음이 녹아서 물이 되어 흐르며, 기러기가 북쪽으로 돌아가는 날이다.


그러나, 작자가 부여하고자 하는 우수는 빗물받이를 뜻한다. 빗물에 고인 빗물받이에 미적 관계성을 불어넣고자 유성페인트로 우수(雨水) 글자를 새기니 그 또한 조화로움이 거처(居處) 분위기를 기분 좋게 해주는 포인트로 자리 잡게 됐다.

행사 때는 퍼포먼스 먹물 통으로, 평상시에는 빗물받이로 진화하고 있다.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니 매일 빗물받이에 고인 빗물과 글자가 연한 물결을 이뤄 미묘한 조화를 이룬다. 소소함에서 행복을 찾는 기분은 행하는 자의 몫이 된다.


한 가지 생각을 더하고 빼는 작업이 길어질수록 다양한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늘어만 가는 요즘이다. 무엇인가를 자꾸 짜내는 지혜의 새섬에서 다른 형태의 뭔가를 발견하고 그 위에 작품화하는 과정이 계속되면서 섬에서의 지루함은 찾아볼 수 없다.  


무엇이든지 자신이 느끼는 감정에 감성을 더해가는 작업은 훌륭한 선택을 하게 만드는 지침서가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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