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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캘리그래피 석산 Apr 08. 2019

제17화 고무동이 머리에 이고

과거 양철 물동이가 사라질 무렵 고무로 만들어진 동이는 공동 우물에서 아낙네들이 음용수를 담아 굽이굽이 황톳길을 따라 집으로 갔던 기억이 새롭다. 물론 남정네들은 물지게를 지고 음용수를 퍼 날랐던 기억이 난다. 특히, 이 고무 동이의 물 3통은 겨울철 된장 담을 때 물의 양을 조절하는데 유용하게 쓰이기도 했다. 그러나, 내 기억 속의 고무 동이는 집안의 소변통으로 사용했다. 소변이 가득 채워져 넘쳐 날 무렵 어머니는 텃밭에 심어놓은 마늘, 고추밭에 거름으로 사용했던 것 같다.

물동이를 이고 집으로 향하는 처자와 아낙네들 

섬사람들에게 고무 동이는 용도에 따라 다양하게 사용됐다. 집 뒤뜰 나무 덤불 속에서 발견된 고무 동이는 찢기고 구멍이 났지만 어머니는 버리지 않고 지금까지도 당시의 추억을 상기시켜준다.


고무 동이를 깨끗이 세척 후,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한자 어미 모(母)를 새기기로 했다.  


'母 세상 어느 곳 가본들 나를 조건 없이 사랑할까'


한자 모(母) 자의 형태는 갈필법(渴筆: 의도적으로 붓의 물기를 제거하여 메마르고 거친 효과를 주는 기법)으로 쓴 글자다. 어머니의 삶 자체가 애환과 굴곡의 여정을 표현하다 보니 글씨의 결이 무질서하게 수놓다 보니 작업하기도 쉽지 않았다. 

고무 동이는 여염집 아낙들의 생활 필수품이기도 했다. 

종이가 아닌 물건에 글씨를 표현할 때마다 느끼는 것은 종이에 표현하는 재료는 붓과 먹물, 종이만 준비해서 쓰고 나면 그것으로 끝나지만, 물건에 새기는 글자는 복잡한 과정이 수반되다는 점에서 종이에 쓰는 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그만큼 쉽지 않은 작업의 연속성으로 시간 투자도 많고 순간마다 주의해서 체크해야 할 상황들이 많다 보니 몇 배의 힘든 작업이라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완성된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희열과 보람은 배가 된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으로 다가온다. 


방치되고 묻혀 잊힐뻔한 고무 동이를 보면서 예전 어머니의 생활상을 짐작하고도 남음이다. 

사람은 갔어도 흔적은 남아 늘 그리움의 어머니와 함께 한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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