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포클레스(Sophocles: 아이스킬로스, 에우리피데스와 함께 그리스의 3대 비극 작가로 꼽히는 인물이다. 그가 활동하던 시기는 아이스킬로스라는 걸출한 비극 작가를 선두로 하여 극 공연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던 때로, 아테네 민주주의가 절정에 달한 그리스 문화의 황금기였다. 소포클레스는 〈오이디푸스〉, 〈안티고네〉, 〈엘렉트라〉 등을 쓴 극작가로 잘 알려져 있지만, 아테네의 정치가이기도 했다. 그는 당시 대표적인 정치가 페리클레스와 함께 최고위직인 스트라테고스(Strategos, 장군)를 지냈고, 펠로폰네소스 전쟁(기원전 431∼기원전 404) 당시 자문위원회의 한 사람으로도 활동했으며, 델로스 동맹의 자금을 관리하는 재무관을 지낼 만큼 아테네를 대표하는 정치가이기도 했다.) (출처: 문학사를 움직인 100인)
“내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은 이들이 그토록 살고 싶은 내일이다”
소포클레스의 명언 중의 하나다. 기원전 400년 전에 글이 지금까지 우리 마음속에 파고드는 이유는 과연 무엇 때문일까? ‘하루’라는 시간을 값지게 살라는 말이지만, 많은 사람들은 결코 그 소중한 24시간의 하루를 값어치 있게 여기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닐까? 반문을 해본다.
만약에 내 생이 내일 마지막이라고 생각해 보자. 물론, 시한부 선고를 받은 사람과 건강한 사람들과의 생각하는 ‘내일’ 단 하루라는 시간은 분명 다름으로 다가올 것이다.
당신의 봄은 앞으로 몇 번이 남아 있을까? 한 번, 다섯 번, 열 번.. 아니 다시 안 올 수도 있는 봄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이렇게 아무 탈없이 하루하루를 잘 살아냈다는 것에 새삼 감사함으로 다가오지 않나요?
필자는 현재 섬 생활자다. 오늘 아침 눈을 뜨면서 “살아 있구나”를 외치고 하루를 시작했다. 정신없었던 도시 생활자로 살아갈 때는 이런 생각조차도 허용되지 않았다.
환경에 따라 삶은 변화할까?
근대 단편 소설가 김동인의 작품 ‘감자’가 갑자기 생각이 났다. 소설 속 주인공 복녀는 선비의 딸이었지만 집안이 어려웠다. 남편의 무능함, 게으름으로 평양의 행랑살이를 전전하다 죄악의 소굴로 잘 알려진 평양 칠성 문밖 빈민굴의 주인이 된다. 최후에는 그곳에서 그녀는 돈 때문에 도덕성 부재에 이르며 살해를 당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환경의 좋고 나쁨을 떠나서 질과 양을 따질 수 있다는 점에서 환경은 분명! 삶의 대한 가치척도를 결정짓는 중요한 열쇠가 된다는 것을 믿고 싶다.
삶을 영위하는데 ‘하루’라는 시간을 소중하고 가치 있게 쓸 수 있다는 것에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