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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캘리그래피 석산 Jan 13. 2020

#23 초일심(初日心), 최후심(最後心)

화엄경에 '초발심 시변 성정각(初發心時便成正覺)'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불각(不覺)의 무명(無明)에서 상사각(相似覺)과 수분각(隨分覺)을 거쳐서 구경각(究竟覺)에 이른 우리네 삶의 패러다임이다. 즉, ‘초일심’과‘최후심’으로 살아갈 것을 권한 내용입니다.


초일심(初日心)이란 첫날의 마음이니 초심과 같다는 뜻이다. 누구나 처음 시작할 때는 감격하고 좋아하며 열심히 하지만, 원하던 직장에 들어가면 처음엔 열심히 잘하리라 다짐하고 또 그렇게 한다. 그러나 몇 달, 몇 년이 지나면서 권태와 요령이 붙어 처음의 모습은 간 곳이 없어진다는 것을 말합니다.


남녀도 극진히 사랑해서 화합된 것이지 싫어하는 사이에는 부부가 될 리 없습니다. 그래서 처음 만나서 설레던 시간, 신혼 초의 추억은 아름답고 행복하기만 합니다. 그러나 살아가면서 점점 짜증이 늘어나고 마치 싫어하는 사람끼리 모여서 부부가 된 것처럼 사는 이들이 적지 않지요. 마음은 그렇지 않으면서 자신도 모르게 타성과 권태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처음의 그 마음, 초심으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습니다. 초심을 잃으면 마음에 감동이 없고, 마음에 감동이 없으면 몸에 감동이 없고, 나아가 생명에 감동이 없는 법입니다. 어린아이들의 눈은 반짝반짝 호기심으로 빛납니다. 세상 온갖 것들이 새롭고, 놀랍고, 감동의 연속이기 때문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가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도 자신을 둘러싼 삶이 익숙하고 새로운 경험이 줄어들기 때문이지요.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바로 최후심(最後心)입니다. 사람을 대할 때나 일을 처리할 때 마지막으로 본다, 마지막으로 한다고 생각하라는 것이지요. 오늘 하루만 보면 더 이상 그 사람을 볼 수 없고, 오늘 하루만 지나면 더 이상 그 일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 미운 생각, 싫은 생각이 나겠습니까. 초심과 최후심을 되새기며 살아간다면 순간순간이, 모든 것들이 소중하고 새롭게 여겨질 것입니다.


그러나 초심과 최후심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내 마음에 달린 것이니 지극히 쉬운 일이건만, 내 마음이 맘대로 되지 않으니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초심과 최후심으로 살아가려는 노력에 앞서, ‘초심과 최후심이 중요하다’는 사실 자체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나의 삶을 이끌어줄 소중한 가치를 잊지 않고 새기는 것이야말로 그렇게 살아갈 수 있게 만드는 가장 큰 힘이 됩니다. 경전을 읽으며 부처님 말씀을 늘 가까이하는 일이 무엇보다 소중하다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새해는 초심으로 내 삶을 돌아보고 새로운 마음가짐을 다지기에 참으로 좋은 시간입니다. 새해, 새 옷, 새 마음, 새 것…. 우리가 쓰는 ‘새’라는 말은 해가 뜨는 동쪽을 뜻하는 옛말이라 합니다. 예전에는 동쪽을 ‘새 쪽’이라 했지요. 그래서 ‘날이 샌다’는 말은 곧 동쪽에서 해가 뜬다는 말입니다. 또 새벽의‘벽’은 ‘밝다’고 할 때의 어근 ‘밝’이 변한 것이라서, 새벽은 ‘동쪽에서 열리는 밝음’이란 뜻입니다. 동풍을 ‘샛바람’이라고 하는 것도 모두 같은 뜻에서 온 것입니다.


그러니 옛사람들은 새로운 것, 시작하는 것은 모두 해가 뜨는 것과 같다고 본 것이지요. 해는 한 번만 뜨는 것이 아니라 매일매일 새로운 해가 뜹니다. 언제든 여러분의 마음에 해가 뜨는 때가 바로 시작의 시간입니다. 매일매일 어김도 차별도 없이 새롭게 뜨는 하늘의 태양처럼, 각자의 마음에 늘 새로운 해를 띄우시기 바랍니다. 그 해는 매일 뜨는 일상적인 것이지만 언제나 신비롭기 그지없고, 우주가 잠에서 깨어나 새롭게 열리는 시작입니다. 새해를 맞아 이러한 뜻을 가슴 깊이 새기시기 바랍니다.

(출처: cafe.daum.net/mj2208/Dmpu/88 법림사, 대해복지센터, 자비명상)

초일심, 최후심 캘리그래피

몇 해 전의 일이다. 서울에서 화장품 회사의 CEO가 석산캘리명함을 주문하면서 뒷면에 들어갈 문구에 초일심(初日心), 최후심(最後心)을 석산체로 써 넣어달라고 주문이 들어왔다. 그당시 초일심과 최후심에 대한 내용을 처음 접한 것 같다.


사람들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본인만의 좌우명이나 슬로건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종종 있는데 서로 주고받는 명함에서도 그 사람의 이름을 기억하는 것은 물론, 그 사람이 추구하는 가치관에 대해서도 이미지가 뚜렷하게 각인되는 느낌을 받는다.


사소한 명함이지만, 뭔가! 다른 사람과 차별화된 전략으로 만나는 사람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피력하고 늘 좌우명을 상기해 마음가짐을 행동으로 실천하려는 사람이 틀림없다. 그래서 몇 년이 지났어도 그분의 목소리, 외연에 깔린 이미지를 기억하고 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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