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위대하지 않았습니다.
일부러 자신을 낮추려 애쓰지도 않았습니다.
당신은 태생이 그랬습니다.
앉아 있으며 옆집 아저씨 같고
서 있으면 동네 이장 같고
걸어가는 뒷모습을 보면 영락없는
공장노동자였습니다.
열에서 한둘이 당신을 만만하게 본 건
아마도 그 때문이었을 겁니다.
그렇다고 기죽을 당신도 아니었습니다.
비록 당신의 입은 좀 거칠었지만
그 사심 없는 당당함은 누구도
흉낼 수 없는,
당신은 가장 높은 곳에 가장 낮은 사람이었습니다.
(출처: 시인 박영희_ 태생이 아름다운 당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청와대 재임시절, 대통령보다 높은 사람이 청와대에 있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았다. 그리고 그 분을 찾아 인사 드렸다. 그 분은 바로 청와대 근무경력 30년의 ‘목수 아저씨’였다.
청와대 들어가서 한 달이 채 안 됐을 무렵이다. 출근길에 소나기가 내렸는데 누군가 우산을 씌워주었다. 그 분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부터 청와대에 근무해 온 목수 아저씨였다. 청와대 생활만 햇수로 30년. 대한민국 최고 권력의 영욕을 지켜 봐온 역사의 산 증인이었다. 나는 영부인께 목수 아저씨 이야기를 했다. 며칠 후 대통령이 그 분을 만났다.
"청와대에서 제일 높은 분이 계신 줄 모르고 인사가 늦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에게는 30년 근속의 목수아저씨가 청와대에서 가장 높은 분이었다. 목수 아저씨가 청와대에서 가장 높다면, 대통령은? ('목수아저씨 일화'/청와대 제2부속실장을 지낸 이은희 실장의 회고' 중에서)
노무현은 어떤 사람도 낮춰 보지 않았다. 사람을 사람으로 대했다. 판사, 변호사 , 국회의원, 장관 시절에도 한결 같았다.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 시절에도 마찬가지였다. 노무현은 가장 높은 곳에 있는 가장 낮은 사람이었다.
퇴임후 고향 봉하마을로 내려왔을때도 노무현의 인간적 면모가 여실이 드러났다. 아무래도 현직에 있을 때보다 마음의 여유가 더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과 말 한마디 나누고 싶어서, 아니면 대통령 얼굴 한번 보고 싶어서, 봉하를 찾은 시골 어르신들을 깍듯이 대접했다. 산에서 장군차 나무를 심다 말고, 산 아래까지 찾아온 어르신들에게 다가가 일일이 손을 잡고 반갑게 맞아주면서 술과 안주를 권하는가 하면, 때로는 땅바닥에 신문지를 깐 술상에서 무릎을 꿇고 막걸리를 따라 주기도 했다.
호기심 많은 여학생들과도 잘 어울렸다. 나이 어린 학생들과 기념 사진을 찍으면서 두 다리를 Y자로 구부려 키를 맞춰 주기도 했다.학생들은 까르르 웃는다. 그런 장면이 언론에 소개되면서 삶에 지친 국민들에게 잠시나마 마음의 위안을 주기도 했다. (출처: '이백만교장의 노무현 이야기'중에서)
2016년 11월, '무등산 노무현길' 표지석 서체를 쓰면서부터 노 전 대통령과의 각별한 인연이 시작되었고, 5월 23일 11주기 추도식이 다가오는 시점에 맞춰 올해로 4년 연속 캘리그래피 추모 작품으로 애도를 하고 있다.
글씨와 함께 담긴 사진은 노무현 전 대통령 재임 시절인 2008년 식목일 봉하마을 가꾸기 행사 중 새참시간에 음식을 맛보며 잠시 눈을 감고 엷은 미소를 짓고 있는 모습이다. 이 사진을 선택하게 된 계기는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인간적이고 겸손한 이미지로 비춰졌기 때문이다.
평소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 정정 당당하게 승부사 기질을 발휘하는 사람들이 성공적인 사회를 만들어 가야 한다는 소신을 굽히지 않았고, 원칙이 승리하는 역사를 우리 후손들에게 물려주는 것이 내가(노무현) 정치를 하는 진짜 이유라는 것을 생전에 입버릇처럼 말했다고 한다.
권위의식을 내보이지 않고, 늘 친구처럼 편안했던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오늘, 그가 그립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