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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상처를 받은 조개는 진주를 만들고..

by 캘리그래피 석산

1남 1녀의 연년생으로 오빠가 1살 더 많은 소녀의 집은 부유했다. 아빠는 일류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외국 유학을 다녀온 엘리트였다. 원래 돈 많은 집안이었는데 아빠의 경영 수완이 좋아 회사는 날로 번창했다. 부와 명예를 바탕으로 나중에 국회의원도 되셨고 세상에는 자기보다 잘난 사람이 없다고 믿었다.

아빠는 소녀가 세상에서 가장 착한 딸이기를 원했다. 누구보다 풍족하게 해 주고 있으니 당연한 요구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머리 길이, 입는 옷, 듣는 음악, 귀가 시간, 과외, 진로, 인터넷 사용 등 소녀는 답답했다. 정해진 룰에 따라야 하는 노예라는 생각도 들었다.


소녀는 자유가 그리워졌다. 친구들과 떡볶이도 먹고 영화도 보고 여행도 가고 싶었다. 수다도 떨며 맑게 웃어 보는 것이 한없이 그리웠다. 더 이상 아빠와 부딪히는 것이 서로의 삶을 불행하게 만든다는 한계에 왔을 때 소녀는 과감히 집을 뛰쳐나왔다. 주유소, 패스트푸드점 아르바이트 등을 하면서 소녀는 전에 느끼지 못한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소녀의 오빠인 소년은 어느 날 바닷가로 여행을 갔다. 바위에 파도가 세차게 몰아쳤다. 바위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말은 하지 않고 있었지만 그 바위도 속으로는 아플 것이다. 표시는 나지 않지만 조금씩 떨어져 나가는 살점에 고통스러워할 것 같았다. 조용히 침묵하고 있지만 세월에 움푹 팬 흔적은 바위의 아픔을 말해준다. 매끄러운 바위보다 울퉁불퉁한 바위가 더 보기 좋고 오르기가 편하다. 사람이나 새, 풀, 꽃들을 품는 것은 매끈한 바위가 아니라 흉터 있는 바위다. 관용은 아픔에서 나온다. 소년은 소녀가 바위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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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한 사람에게 모든 축복을 주지도 않고 한 사람에게 모든 상처를 주지도 않는다. 고위층, 재벌, 연예인, 스포츠 스타들도 측근의 배신, 자녀의 자살, 질병, 병역, 이혼 등 상처 투성으로 얼룩져 있다. 상처 없는 삶을 바랄 것이 아니라 상처를 받아들이고 긍정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아이들은 아프면서도 장난을 친다. 쓰라려 눈물이 나더라도 한편 금세 웃는다. 아이들처럼 낙천적이라야 상처가 밥이 되고 큰 스승이 된다. 대추도 상처 받지 않으면 여물지 못하고 사랑도 상처 받지 않으면 겉돌 뿐 성숙해질 수 없다. 오랜 시간 정성을 다해 보듬고 감싸면 모래 상처도 진주가 된다.


추위가 오면 나무는 양분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잎에 영양공급을 중단한다. 잎은 시들어 가고 나무의 아픔은 단풍이 되어 결국에는 낙화로 이어진다. 나무는 떠나는 마지막 그 뒷모습도 소중하게 생각한다. 복수 대신 불타는 아름다움으로 치장을 한다. 나무의 상처는 붉은 시, 노란 노래가 된다.


상처가 절망만을 동반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상처에서 고운 수채화가 나오고 상처에서 봄의 희망이 자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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