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가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바다가 불러주는 자장노래에
팔 베고 스르르르 잠이 듭니다.
아기는 잠을 곤히 자고 있지만
갈매기 울음소리 맘이 설레여
다 못 찬 굴 바구니 머리에 이고
엄마는 모래 길을 달려옵니다.
[출처: 이선희_ 섬집아기]
한인현 작사, 이흥렬 작곡의 ‘섬집 아기’가 1950년 한국전쟁 통에 만들어진 노래로 밝고 희망적인 내용의 동요가 아님에도 집에 혼자 남겨져 잠드는 아기의 모습과 굴 바구니를 다 채우지 못하고 달려오는 엄마의 모습을 통해 어려운 현실과 엄마의 애틋한 마음을 서정적으로 표현한 국민동요로 가수 이선희 씨가 부른 ‘섬집 아기’를 즐겨 들었다. 물론, 이 동요를 좋아하는 이유는 본인의 어릴 적 시대상에도 충분히 공감 요소가 많다는 점이다. 1971년 섬마을에서 태어나 자란 과정의 기억들이 활동사진처럼 어렴풋이 기억나게 만드는 노래이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봄·여름·가을·겨울... 오직! 일벌레처럼 일을 하셨다. 갓 태어난 나를 퀴퀴한 냄새가 인상적인 오래된 장롱 속에 가두고 해가 떨어질 때까지 밭일과 바다 일을 번갈아 하는 동안 장롱 속 아기는 온 힘을 다해 울음을 터뜨리다 지쳐 잠이 들었다. 해가 지면 어머니는 나를 장롱 속에서 꺼내어 젖을 물렸던 유아기 시절.. “아마 3살이 넘어가는 시점까지 장롱이 놀이터였다.”라고 어머니 살아생전에 내게 우스개 말로 들었던 것 같다.
요즘처럼 영·유아기들의 돌봄 시설이 잘 갖춰진 시대에 비해 1970년대만 해도 섬 아낙들은 아이를 출산 후 산후조리도 제대로 못한 채 바로 일터로 나가야 했던 어려운 시절이었다.
한 겨울 어머니는 물이 빠지면 갯가에서 많은 시간을 할애해 굴을 따오기도 했다. 그 ‘섬 그늘(그늘지고 어두운 갯바위 지역)’에는 아직도 어머니가 굴을 따고 있지 않을까? 라는 착각을 해보기도 한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섬 집에서 그 옛날 어머니가 앉아서 굴을 땄던 갯바위 군락지가 눈에 아련히 들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