료칸 선사(Ryokan , 良寬, 1603~1867: 일본 도쿠가와 시대 후기의 선승으로 시인이자 서예가로 크게 이름을 떨쳤다. 촌장의 장남으로 태어나 17세경에 출가하여 다이 구료 칸[大愚]이라는 법명을 얻어 승려가 되었다. 21세 때 순회 승려인 고쿠센[國仙]을 따라 비추 구니[備中國]의 다 마시마 [玉島]에 있는 엔쓰 사 [圓通寺]라는 그의 사찰로 갔다. 거기서 12년 동안 엄격한 수도생활을 했으며 고쿠센이 죽은 뒤에는 탁발승으로 일본 전역을 돌아다녔다. 노년에 고향인 에치고 구니로 돌아와 만요슈[萬葉集]와 고대 서예를 연구했다. 그는 젊은 여승 데이신[貞心]과 깊은 사제관계를 이루었는데, 이 여승은 료칸이 죽은 후 그의 하이쿠[俳句]와 와카[和歌]들을 모아 〈연꽃 위의 이슬 蓮の露〉(1835)을 편찬했다. 그는 또한 우아한 필치로 높이 평가되는 여러 편의 서예 문을 쓰기도 했다. [출처: 다음 백과]
일본 애도 시대 고승이었던 료칸 선사의 동생이 방탕한 생활을 하는 자식에게 훈계를 좀 해달라고 했다. 선사는 조카에게 갔다. 그러나 선사는 정담만 나눌 뿐 한마디 훈계도 하지 않았다. 큰 기대를 했던 동생은 내심 불만이 많았지만 그렇다고 다그칠 수도 없었다. 며칠 후 선사는 떠나겠다고 작별 인사를 하며 조카에게 말했다.
“세월은 어쩔 수 없구나. 옛날에는 안 그랬는데 나이가 드니 손도 떨리고 무엇 하나 마음대로 할 수가 없구나. 짚신 끈 매는 것을 좀 도와주겠느냐?”
조카는 짚신 끈을 매기 위해 선사의 발을 잡았다. 거칠고 야윈 발을 보니 가슴이 뭉클했다.
료칸 선사가 다시 말했다. “인생이란 하루가 다르게 늙고 약해진다. 불필요하게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소중한 일들을 먼저 하도록 해라.” 료칸 선사는 그 어떤 설교도 하지 않았다. 단지 야윈 발을 보여주며 ‘시간의 소중함’에 대해 한마디 했을 뿐이다.
그러나 그날부터 조카는 변하기 시작했고 방탕한 생활을 말끔히 청산했다.
미물인 매미, 청개구리, 파리, 모기는 하루 종일 쉬지 않고 떠들어도 시끄럽고 괴로울 뿐이지만, 수탉은 아무 때나 울지 않는다. 날이 밝아올 때만 운다. 사람들은 수탉의 울음소리를 듣고 날이 밝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잠에서 깨어 하루를 시작한다.
그 비근한 예로 우리는 “수탉이 울면 집안이 잘된다는 것은 여자 말을 잘 들어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하는 경우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