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 서문에는 아래와 같은 말이 나온다.
國之語音이 異乎中國하여 與文字로 不相流通할새 故로 愚民이 有所欲言하야도而終不得伸其情者가 多矣라. 予가 爲此憫然하야 新制二十八字하노니欲使人人으로 易習하여 便於日用耳니라.
나라의 말소리가 중국(의 말소리)과 달라서 서로 잘 통하지 않거늘 그러므로 어리석은 백성이 말하고자 할 바가 있어도 마침내 그 뜻을 표현할 수 없는 사람이 많다. 내가 이를 위하여 ‘어여삐 여겨서’ 새로 스물여덟 글자를 만드니 사람들로 하여금 쉽게 익혀서 날마다 씀에 편안하게 하고자 할 따름이다.
여기서 '어여삐 여겨서'라는 말이 나온다. 물론 현대어로 표현하면 ‘불쌍히 여기다’라는 말로 쓰인다. 원뜻은 마음 한 구석이 짠하게 느껴지지만 한편으로는 고전과 감성적인 뉘앙스가 참 좋다.
개신교에서는 불쌍하다는 말을 ‘긍휼의 마음’으로 쓰이는 것으로 알고 있다.
서로 어여삐 여기고
원망하고 미워하지 말고
용서하며 살아가도 되는 것을
과연 사람들이 가난해서 불쌍하고 가엽다고 말할까? 물론, 가난해서 불쌍한 면도 없지 않겠지만 여기서는 삶에 대한 성찰에 대한 얘기를 논하려는 것이다.
부유하지만 마음의 여유가 없어 불쌍한 자, 일속에 파묻혀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지 못한 자, 늘 부정적인 시선과 날 선 말투로 상대방에게 상처를 입히는 자, 야비한 권모술수로 남의 인격과 재산을 갈취하려는 자..
누군가를 원망하고 미워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자기 자신의 대한 의무와 책임을 제대로 못했다는 점을 먼저 꼽아야 할 것 같다. 사랑, 일, 사회관 계성을 총망라해 스스로에게 만족을 못하거나 좌절을 느낄 때 비로소 누군가에 대한 원망이나 미움이 싹트는 것이다.
혼자서는 도저히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 나의 경험으로 비춰 볼 때 종교를 통해 잠시 머리를 식히는 방법도 있다. 마음이 불안하고 답답할 때 절을 찾아 고승들의 법문을 듣다 보면 마음의 평안을 찾았던 기억이 있다. 물론 불교 신자는 아니다.
지나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을 당시에는 안달복달을 하며 마음을 피폐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