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쓰는 글씨의 폐해
캘리그래피 ‘누구나 쓸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아무나 쓸 수는 없다.’
거리를 나가보면 우리들에게 친숙하게 다가오는 간판의 상호들을 볼 수 있다.
대부분의 획일적인 타이포그래픽이 점령하고 있는 가운데 캘리그래피 간판 디자인도 손쉽게 눈에 띈다. 모두가 막 쓴 글씨라고 말할 수 없겠지만, 아름다운 한글을 지저분하게 낙서처럼 보이는 글씨들이 간혹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경우가 있다. 간판집에서 그래픽으로 도안한 글씨에 대충 맞춰나가는 듯한 글씨들..., 타이포도 아니고 손글씨도 아닌 글씨들이 도시의 벽에 잠을 자고 있다.
몇 년 전 간판업체와 업무제휴를 통해 생활 속으로 파고드는 친숙한 캘리그래피 간판 글씨를 작업한 일이 있었다. 솔직히 간판업체의 경우 대부분 영세하다 보니 고비용을 들여서 캘리그래피 작가들의 글씨를 받는 것을 꺼려하는 경향이 많았고, 또한 캘리그래피 간판 제작을 하는 데 있어서 업무제휴 의도는 좋은데 수지타산이 안 맞다고 난색을 표한 업체가 많은 것 또한 사실이다. 그로 인해 몇몇 간판업체들은 필체가 조금이라도 있는 직원을 대상으로 대충 막 쓰는 글씨를 쓰거나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해 만든 글씨를 내놓는다는 것을 알았다. “참!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캘리그래피의 수요가 많아짐에 따라 이런 편법이 생겨나고 있다는 것에 마음이 아팠다. 그것도 그럴 것이 간판업체들만의 일은 아니다. 우리들이 흔히 접하는 음식점, 주유소 광고 전단지, 관공서에서 발행하는 홍보용 책자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막 쓰는 글씨의 폐해가 넘쳐나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너도 하니까.. 나도 해”
뭐가 조금 된다 싶으면 너 나할 것 없이 앞뒤 안 재고 뛰어드는 현상들...
예를 들어, 우리들 생활 속에 편의점, 치킨집, 당구장, 노래연습장, 게임방, 골프연습장에 이르기까지 다 같이 죽자는 형태들..., 모두가 제살 깎아먹는 줄 모르고 덤벼드는 모습들을 보면서 오죽하면 그럴까?라는 생각도 들지만, 분명한 것은 누가 보더라도 ‘저것은 아닌데’라는 공감이 되는 것에 대해서는 스스로 판단해서 고치려는 사고가 먼저 선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왜?
피해는 고스란히 정도의 길을 걷고 있는 작가들에게 간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글씨라는 게 꼭 이렇게 쓰고, 저렇게 써야 한다는 정확한 명제는 없지만, 그렇다고 기본이 흔들리는 글씨를 쓴다면 아름다운 한글을 읽고 쓰는 사람들에게 큰 죄인이 된다는 것을 이번 기회를 통해 성찰했으면 한다.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대왕 세종께서 만백성에게 한글을 창제한 이유...?
분명! 한글을 아름답게 보존하고 쓰이게 하자는 마음에서 만들었을 것이다.
그 아름다움을 막 쓰는 글씨로 낙서처럼 표현한다면 세종댕항께 큰 누를 범하는 꼴이 되지 않을까?
한 번쯤 깊이 생각하는 시간이 필요할 듯싶다.